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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보르미 Oct 15. 2021

4번의 오진을 알아챈 날 5번째도 오진이길 바랬다.

희망 서사 1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 딸아이가 이모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결심했다.

이제는 훌훌 떨쳐 버려도 되겠다.

중학교 2학년.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독서와 운동을 하는 아이.

운동 후 스스로 간단한 식사를 챙겨 먹는 루틴을 가지고, 그 루틴이 엄마를 보고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해주는 고마운 내 딸... 잘 자라고 있구나...




"엄마 다리가 아파"

"뭐라고?

와!!!

야호!!!

드디어 성장통이 오는구나!!

어떤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고 아침마다 크는 게 보였다는데 정말 기대된다!! 쑥쑥 크자!!"

10월생.

하반기에 태어나 성장이 느려서 그럴 거라고 위로했지만 사실 아이는 13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반에서 키순으로 세 번째를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인 내가 작아서 늘 키가 신경 쓰였는데  아이가 아침부터 다리가 아프다고 했을 때 사실 정말 기뻤다.

아침에 눈 뜨면 아프다고 하는 아이는 전형적인 성장통의 증상을 보였다.

"성장통이니깐 곧 괜찮아질 거야. 대신 더 잘 클 수 있게 더 잘 먹고 잘 자야지."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아이가 크는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꾸 아프다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병원을 가서 엑스레이라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특이소견은 없었다.

선생님은 성장통이 심하면 진통제 복용을 하기도 한다며 진통제를 처방해 주셨다.

그리고 혹시나 계속 아프다고 하면 다시 오라는 이야길 하셨다.

아플 땐 진통제를 먹으며 통증을 조절했지만, 약발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받아 온 진통제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고민 끝에 소아과 말고 정형외과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장비를 갖춘 그래도 동네서 젤 큰 병원을 찾았다.

자초지종 설명을 하니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를 해 보자고 하셨고, 검사 후 선생님은 특별한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며 성장통일 가능성이 크다고 물리치료와 진통제를 처방해 주셨다.

성장통엔 물리치료가 큰 효과가 없는 건지 아이의 통증은 호전되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는 횟수는 증가했고, 병원에서 받은 진통제 외에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서 먹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사이 아이는 학교도 잘 다니고, 좋아하는 태권도도 잘 다녔다.

통증은 아침에 주로 나타났고, 시간이 지나면서 밤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번의 물리치료를 더 받았지만 통증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밤에 다리 통증이 시작되면서 남편과 나는 교대로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다리를 주물러주면 아이는 곧 잘 잠이 들었고, 편안해했다.

아이가 아파하면 아이 방에서 다리를 주무르다 잠들고, 아침에 출근하를 반복하면서 우리의 피로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고, 서로가 지쳐가기 시작했다.

낮에는 잘 놀고, 태권도까지 잘 다녀오는 아이가 밤과 아침이면 아프다고 울기 시작하니 우리는 아이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혹시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건가?

우리가 둘째에게만 너무 집중하고 있었나?...

아프다고 우는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동네 다른 병원을 찾았다.

그 병원에서의 처방도 똑같았다. 이상이 없으니 물리치료를 받고 가라는 처방.

물리치료를 받고 온 그 날밤도 아이는 울었고, 다음날 아침에도 아이는 울었다.

그럼에도 또 일상생활은 잘했다.

태권도 관장님도 운동 중에는 특별히 아픈 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뭐가 문제일까? 도대체 뭐가...

그날도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잠이 부족했던 나는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병원에서도 괜찮다는데 어쩌라고 ㅜㅜ

옆에 가서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다시 잠드는 아이. 편안한 얼굴...

옆에서 나는 쪽잠을 잤다.

아침에 눈을 뜨고 결심을 했다.

정말 괜찮다는 걸 아이에게 알려줘야겠다 싶었다.

바로 데리고 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119 응급차가 왔다 갔다 거리고, 여기저기 시끄러운 소리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할머니의 모습부터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아기까지 응급실에서 멀쩡히 걸어 다니는 우리 아이는 소외되기 딱 좋았다.

나는 아이가 이런 모습들을 보고 좀 느끼길 바랬다.

아프다는 건 저런 거라고.

여기까지 와서 정말 괜찮다고 하면 진짜 괜찮은 거라고.

무수히 많은 의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과는 역시나 이상 무.

그래도 의심스러우면 MRI 찍어봐야 하니 외래로 예약하란다.

나는 무조건 하겠다고 했지만 예약은 2달 뒤에나 가능.

내가 응급실을 간 이유를 알기나 한 듯 응급실 의사 선생님은 우리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이야기하셨다.

" 태권도까지 다닐 정도면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혹시 태권도에서 무리하지 않았나 한 번 봐주세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난 단단히 화가 났다.

이렇게 괜찮다는데 도대체 왜 아프다고 하는 거냐고...

그런 마음의 소리를 숨기고 차분히 이야기했다.

" 우리 태권도 그만 다니자. 쉬면서 좀 지켜보게"

"어, 알겠어."

태권도라면 너무나 좋아하던, 무슨 일이 있어도 태권도 학원은 가야 했던 활동량 많고 운동을 좋아하는 딸이 너무 쉽게 대답을 했다.

그때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태권도를 안 가기 시작하고 집에서 쉬었지만 통증은 여전했고, 우리가 다리를 주무르는 시간은 점차 길어져갔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아전문 정형외과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을지병원 소아정형외과를 방문한 날,

아이가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본 연세 지긋하신 선생님은 단번에

"이건 절대 성장통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어봐야 알겠지만 성장통은 저렇게 한쪽 다리를 저는 일은 없습니다.

보통은 양쪽  다리로 오기 때문인데, 우선 간단하게 엑스레이부터 찍고 오지요."

그리고 몇 장의 엑스레이 촬영 후,

아이를 밖에 두고 들어오라고 하신 선생님의 표정은 심각했다.

"제가 다음 주부터 외국 학회를 나가야 하는데....

여기 말고 더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제가 진료의뢰서를 써 드릴게요...."

간단한 엑스레이 사진인데 내 눈에도 보였다.

왼쪽 대퇴골 사이에 커다랗고 까만 그림자...

우리가 그날 어떻게 돌아왔는지 어떤 밤을 보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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