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서사 3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6인실에서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는 우리 아이뿐이다.
돌을 갓 넘긴 아이부터 고등학생 언니까지.
부산 아이부터 서울 아이까지.
한국 아이부터 러시아 아이까지...
낮에는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밤이 문제였다.
우리 아이도 밤에 유독 많이 아파했는데 병실의 아이들 모두 밤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모두 커튼을 치고, 아이가 아프다고 울면 조용히 속삭인다.
"그래그래 조금만 조용히… 어어 그래그래 쉿... 쉿..."
그러다 간호사를 불러 진통제를 맞고 하나 둘 잠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플 때 주물러 주는 거 외에 해줄 수 있는 일이 더 있어서...
입원하고는 그 누구 하고도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커튼으로 침대를 둘러싸 다른 이의 눈빛을 차단하고 아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언니들의 전화를 받고, 시어머니, 엄마 전화 정도만 받았다.
통화하면 괜히 맘이 힘들어지고,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그런데 때마침 아이들을 봐주시던 예전 돌봄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받았다.
"햇님 엄마, 잘 지내지? 오이 고추 농사지은 거 좀 갖다 줄려고 하는데 집에 있어?"
우리는 선생님네 오이 고추를 무척이나 잘 먹었고, 선생님은 또 잊지 않고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
눈물이 주체할 수 없게 흘러 슬쩍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 저희 병원이에요...
햇님이가 다리가 아프다 했는데...
암인 것 같대요... 선생님... "
울음을 삼키고 삼키느라 무슨 소린지 정확치도 않았을 텐데 선생님은 잘도 알아들으셨다.
"뭐라고? 어마나... 이게 무슨 일이야...
햇님이네 가족처럼 착하게 사는 사람들한테 이게 무슨 일이야...
에구구... 내가 다 눈물이 나네...
햇님 엄마, 이럴수록 정신 차려야 해 알겠지?"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병실로 돌아왔다.
"엄마"
그동안 별 말이 없던 아이가 나를 불렀다.
"어?"
이미 눈은 충혈되어 있고, 코끝은 붉다.
"엄마 나 암이야?"
"어?... 아니... 아직 잘 몰라... 검사 더 해봐야지..."
"그런데 엄마는 왜 그렇게 자꾸 울어?"
"아.. 그러게... 미안"
"나랑 안 울기로 약속해"
"어... 그래그래... 엄마 이제 안 울게..."
우린 손가락을 걸었다.
그럼에도 난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아이의 좌측 대퇴골 정 중간은 암덩어리가 떡하니 보인다.
수술로 그 암을 긁어내고, 조직검사를 하고, 정확한 암의 이름을 찾은 다음 치료가 결정이 된다.
수술로 다 긁어내긴 어렵다고 했다.
그럼 뼈를 뚝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고, 우선 조직검사 결과를 보고 다시 결정을 하기로 했다.
수술이 끝난 날, 정말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견디고 나온 아이는 그 어떤 진통제로도 통증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마약성 진통제를 맞아도 통증은 멈추지 않았고, 다리를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퉁퉁부은 얼굴로 아프다고 울기만 하는 아이.
이젠 내가 해 줄 수 있었던 주무르는 일까지 할 수 없게 된 상황…
진통제도 시간 간격을 둬야 해서 정말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뼈를 깎는 고통이란 걸 겪어내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해 줄 수 있는 게 고작 옆에 있어주는 정도였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동안 우리는 진통제와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일 외엔 딱히 병원에서 할 일이 없었다.
아이는 집에 가길 원했다.
선생님은 아직 위험하다고 했지만, 밤에 조용하라고 하지 않고,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실컷 울 수 있게 해주고 싶기도 했다.
선생님께 혹시 견디기 힘들면 응급실로 바로 오겠다고 이야기하고, 우린 퇴원을 강행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밤엔 마음껏 소리 내 울더니 아침이 되어선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과 상의 끝에 학교에서는 휠체어를 준비해줬고, 우린 그렇게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담임선생님은 반 친구들에게 휠체어 미는 당번을 정해주셨고,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던 어느 날은 가녀린 몸으로 아이를 업고 내려오기도 하셨다.
몸과 마음이 힘든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천사 같았던 그분. 이채영 선생님....
그러는 사이 2주 걸린다던 조직검사 결과는 3주 차가 되어서야 나왔다.
우리에게 내려진 병명은 랑게르한스세포조직구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