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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의취향과 윤글 Jun 09. 2016

피지도 못할 담배가 생각나는 밤에

재떨이를 앞에 두고서


안녕, 요즘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다든가 하는 그런 불필요한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오늘 이 편지 속에선 너를 향해, 아니 너의 곁에서 계속 있는 나를 향해 불편함을 토로할 테니까, 속 편한 사람들끼리나 나누는 안부 인사는 생략해야 될 것 같아.


있잖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믿어달라고, 나는 네 편이라고 했던 말들, 거짓이 아닌데 그게 또 너무 진심인 게 나를 힘들게 하고 있어. 내가 뱉은 말에 진심을 너무 담았던 게 나를 너무 옥죄고 있어. 너는 나한테 기대면 되는데 나는 아무도 없어. 근데 이제 이건 너한테 말할 수가 없잖아. 나를 믿는다는데, 나한테 기댄다는데. 나밖에 없다는데 내가 네 앞에서 무너지면 안 되잖아. 네가 나보다 더 아프잖아.


근데 있지, 나 요즘 조금, 아니 많이 힘들어. 얼마 전에 나 되게 큰일 있었는데 아무도 물어주질 않는 거야.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는 거야. 나 울고 있는데 나 힘들어 죽겠고 속이 답답해 죽겠고 너무 죽겠는데 아무도 물어봐주질 않는 거야. 그게 또 너무 서러워서 많이 울었거든, 근데 그때도 너는 나한테 그러더라. 아프다고, 힘들다고, 그 사람이 보고 싶다고.


네가 나쁜 건 아냐. 사실 말하자면 내가 참 나쁘지. 내가 나쁜 년이지. 너를 위로하면서 나도 위로받길 바란다는 거, 참 못할 짓이니까. 네가 그리 아픈 걸 보면서도 나를 좀 챙겨주길 바라니까. 그래서 미안해. 너한테 되게 미안해. 나 원래부터 미안하다는 말 자주 하잖아, 근데 너한테 유독 많이 하는 이유가 아마 이건가 봐. 너무 미안하다.


미안해. 이런 내가 너를 품겠다고, 버티고 있어 주겠다고 약속해서.


미안해. 네가 아니라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


재떨이를 앞에 두고 이 얘기를 하고 있으니 필 줄도 모르는 담배가 생각나는 밤이야.


잘 자.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너라도 잘 자야지.






윤, 그리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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