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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의취향과 윤글 Jul 04. 2016

두 사람, 두 사랑

이 별의 일.


1.


한 여자가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 문자가 온 걸 확인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나와, 할 말 있어.'


저장된 이름은 연인답게 ♡이지만, 그가 보낸 글자 하나하나에는 연인에게 보내는 애정이라곤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의 문자를 받고 외출을 준비하기 위해 화장대에 앉았다.


"얼굴이 이게 뭐야."


거울 속에 보이는 한 여자의 얼굴은, 마치 사막 한 가운데에서 몇 박을 하고,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처럼 수척해져 있었다.



2.


카페 앞, 그녀는 향수를 뿌리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당신, 만나기만 해. 이게 얼마만에 보는 거냐고 엄청 다그칠 거야. 각오 해"


그녀는, 오랜만에 그를 만나러 간다.



3.

몇 마디 말이 오간 후, 결국 침묵에 휩싸인 둘 가운데로 이별의 기운이 흐른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내젓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 말 좀 해봐. 왜 말이 없어? 나랑 할 얘기 있다며. 아, 맞아. 당신 문자한 거 다 보여줄까? 어떤 식인지? 여자친구한테 너무하는 거 아냐? 이제 건조한 당신 문자에 이골이 나."


그는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가만히 듣고만 있다.


"며칠씩 연락 안 되는 것도 너무 화가 나지만, 바쁜 당신 이해해서 내가 양보한다 쳐. 인심 써서, 문자도 뭐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래도 이건 진짜 너무해. 오랜만에 만나서 또 아무 의미 없는 얘기나 하고 있잖아. 당신, 좀 더 다정해질 순 없어?"


그는 손에 든 에스프레소 잔을 만지작거리다, 말한다.


"미안해. 나는 너를 사랑할 자격이 없어."


그가 처음으로 말한 문장은, 그녀로 하여금 마른 세수를 하게 만들었다.


"너 영화 찍어? 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야?"


되묻는 그녀의 입술이 쩍쩍 갈라졌다. 꼭 가뭄이 덮친 땅 같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더운 입김이 그녀의 눈빛을 다 말라 죽게 할 작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4.


"나는 여지껏 지는 계절의 꽃들을, 안타깝게 죽어가는 것들을, 닿지 못해 아까운 마음들을 생각하면서 살았어. 아주 강한 빛을 품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어. 그러다 내 빛에 네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어. 내 등잔 밑에서 네가 썩어 문드러지는 걸 나는 보지 못했어."


"하아, 말은 청산유수지. 누가 작가 아니랄까 봐, 이별멘트도 적어서 외웠니? 그럼 표정이라도 좀 진정성있게 꾸며서 오지 그랬어. 진심 하나 없는 그딴 얘기 필요 없어. 누가 그런 말이나 하재? 그냥 '나 때문에 내가 많이 망가졌으니 미안하다. 이제 넌 너대로, 난 나대로 살자.' 그거 말하려고 했으면 그냥 하면 되는 거잖아. 아니야?"


그녀가 역정을 내는 동안, 지진이 난 것처럼 온 땅과 몸이 흔들렸다. 그녀가 부서질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전부.



5.


"맞아. 내가 또 괜히 포장했다. 미안해."


"늘 그래, 당신은 늘 미안해하고, 나는 속 좁게 삐치기나 하고. 그랬지, 그래 왔지."


"아니야, 내가 매일 너를 힘들게 했던 거야."


"동정하지 마, 그런 눈빛 저리 치워. 역겨워. 맞아, 당신 진짜 나쁜 새끼야. 친구가 없어서 당신이라도 붙들어야겠어서 당신 옆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는데 이제 정말 끝이야. 내 인생에서 꺼져, 제발."


그의 시선이 그녀를 발가벗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름이 끼치고 오한이 들었다.



6.


"미안해. 온전치 못해서.그리고 잘 지내. 이건 진심이야."


"끝까지 잘난 척이지. 꺼져, 꺼지라고!"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쳤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져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그녀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7.


"여기가 우리 처음 만났던 곳인데.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여자는 아직 사랑이었고,


"어, 자기야. 우리 어디서 볼까?"


남자는 진작부터 다른 사랑이었다.









윤, 그리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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