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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의취향과 윤글 Mar 26. 2017

작은 에세이

 문득문득 그냥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있을 수 있다. 문득이라는 단어와 엮이기에 적합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건 자연스럽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종의 '현상'이다.


예전에 함께 있던 장소라든가 함께 했던 일, 같이 있을 때 했던 말 같은 매개체 때문에 떠오르는 건 문득이라고 하기 힘들다. 정말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을 하다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이 눈 앞에 쑤욱 나타나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와중에 갑자기 그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드는 게 문득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문득에 익숙하지 않다. 문득은 정말 문득 찾아온다. 아무 패턴도 없이, 아무 언질도 없이. 그런 건 조금 무서운 일이다. 번호를 바꿨는데 어느 날 문득 휴대폰으로 나를 찾는 문자가 오는 것처럼, 이사를 갔는데 갑자기 내 주소로 예전 우편이 날아오는 것처럼.


떠오르면 속절없이 떠올려야 한다. 어지러운 그때로 돌아가 그 날의 기억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되새김질해야 한다. 나는 그때를 기억하지 않고 싶은데, 그때는 자꾸 그때를 각인시킨다.


오늘도 한 명의 문득이 있었다. 문득 나를 찾아와 과거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그 문득이 너무 두려워 한 시간을 떨었다. 내내 떨면서 과거를 기억해야 했다. 그날의 너와 내 모습과 그날의 모든 표정들, 그 모든 감각을. 지금 느끼는 것처럼 너무 생생해졌다. 내가 올해를 사는 게 아니라 몇 년 전에 살고 있다고 잠깐 착각할 정도였다.


문득, 다 떠올랐다. 깊은 수심에 있던 심해어가 뭍으로 올라와버린다거나, 하늘에 있어야 할 구름이 어느 계곡에 떨어졌다는 기사를 보는 기괴한 기분이 되었다. 이런 걸 추억이라 부르며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오늘 떠오른 내 문득은 추억이라 하기엔 조금 무섭다. 나는 오늘 현실이 붕괴되는 기분이었다. 현재가 없는 사람의 기분을 잠깐 느꼈다.


나는 모든 문득을 반가워하지 않는 경향이 강한 사람이지만 오늘 이후로 조금 더 그럴 것 같다. 문득, 내 현재를 망가뜨리면서까지 과거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다. 문득의 문득, 나는 그럴 필요도 여유도 없다.


반갑지 않은 문득이 자주 있지 않길 바라며, 새벽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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