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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의취향과 윤글 Mar 26. 2017

작은 일기.

기분이 좋았다가 아니었다 해서 결국 향수를 손목에 좀 뿌렸어. 향수 뚜껑을 열고 살짝 눌러서 치익- 뿌리는데 그 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좀 놀랐어. 나는 귀가 좋지 않아서 말을 두 번씩 해야 알아듣곤 하거든. 방이 조용해서 그런가. 향이 손목 안쪽에서부터 조용히 퍼지고 있어. 향이 퍼지는 모양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아질 것도 같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눈이 피곤하지 않으니까. 그러고 보니 나는 조용한 것들을 닮고 싶었어. 이를테면 향, 밤, 달 같은. 조용한 것들은 아름다우니까. 근데 나는 결국 닮지 못한 것 같아. 아름답지 않다는 뜻도, 조용하지 않다는 뜻도 되겠지. 이젠 손목 안쪽을 쳐다보고 있어. 핏줄이 지나가는 자리가 바깥 피부 가까이에 있는 걸까. 맥이 뛰는 게 얼핏 보여. 두근두근은 의성어가 아니었나. 가만히 보고 있어. 가만히 있는 동안에도 나는 가만히 살아지는구나. 기분이 또 이상해졌어. 오늘은 끝까지 좋았다가 아니었다 하는 날인가 봐. 가만히 눈을 감아.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당신은 오늘 어땠을까. 좋았을까 아니었을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을까. 당신에게 말을 걸고 싶어. 닮고 싶은 단어가 있냐고 물어보고 싶어. 손목 안쪽에 맥이 뛰는 걸 구경한 적 있냐고 물어보고 싶어. 역시 나는. 잘 자. 그리고. 안, 녕. 나는 이 말이 그렇게 어려워. 안녕에는 안녕이 아닌 다른 뜻이 너무 많잖아. 그게 너무 슬퍼서. 역시 나는. 향이 사라지면 아침이 올까. 아침이 되면 향이 사라질까. 향이 사라지고 그래서 아침이 되어도 안녕은 어려울 텐데.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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