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구경
매일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니 예민해졌다. 컨디션이 안 좋아 입안이 다 헐었다. 잇몸들이 부었는지 음식을 씹을 때마다 아프다. 머리가 띵하고 무겁기만 하다.
사무실을 알아봐야 해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잠깐 지나가는 길에 벚꽃이 예뻐 잠깐 쉬어갈까 싶어서 차를 세웠다. 눈보라같이 벚꽃들이 휘날린다.
"예쁘다."
바람도 살랑살랑 차갑지 않고
따뜻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매해 겨울은 춥지만, 올 겨울은 유독 더 추웠다.
잠깐 벤치에 앉아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았다.
산책하는 중년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다.
강아지들도 신난 것 같다.
다들 나만 빼고 여유 있어 보인다.
작년에 벚꽃구경이 그렇게 가고 싶었다.
길고 긴 벚꽃길을 천천히 걷고 또 걷고 싶었다.
벚꽃을 보며 벤치에 앉아 꽃멍을 하고 싶었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벚꽃눈을 실컷 맞고 싶었다.
그냥 그 예쁜 길을 걸으면 귀한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우연히, 혼자 앉아
벚꽃을 맞네. 눈이 부시다.
잠깐,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커피라도 사 올 겸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30분만 딱 나를 위한 사치를 부려보자 마음먹었다.
올해도 지금 아니면 또 못 볼 것이다.
조금 걷다 보니 아담한 핸드드립 카페가 있다.
원목의 느낌으로, 꼭 백설공주가 잠들어있는 난쟁이들 집 같다. 문을 열자 청량한 종소리가 들렸다.
향긋한 커피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따뜻한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고 벚꽃길이 보이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페 곳곳이 귀여운 소품들이 먼지하나 없이 귀엽게 앉아있다.
"커피 나왔습니다"
"여기 쿠키는 뭐예요?"
진열대에 "행운의 쿠키"라고 쓰여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스콘이었다.
"그냥 재미있으시라고요 호호."
로또당첨된다 스콘
행운 한 점 쿠키
웃습니다 쿠키
고민타파해 스콘등 다양한 이름의 재미있는 쿠키와 스콘들이 있었다.
난 고민하다 '요술램프 지니 스콘'을 집었다.
함께 커피와 먹는 동안 계속 지니만 생각났다.
요술램프 지니가 파란색이었나?
다리가 있었던가?
소원을 들어주던 요정이었나?
아니 알라딘을 계속 도와줬던 거 아니었나?
진짜 내 소원도 들어주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지니스콘 덕분에 나의 벚꽃구경과 30분의 사치는 쓸데없는 다른 걱정 없이 유쾌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행복한 혼자만의 시간 30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시간을 보냈다.
햇살의 온기와 향긋한 커피와 고소한 스콘이
그리고 지니가 날 완충해 주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현명한 말솜씨를 주세요."
"매일매일 쏟아지는 끊임없는 에너지를 주세요."
"적재적소 기회를 포착하고, 흐름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똑똑한 지혜를 주세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끊이지 않는 재물,
늙지 않는 건강,
그리고 우뚝 솟아오를 명예를 뚝딱 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니에게 졸부처럼 받아낸
돈. 건강. 명예에 따라오는 모든 것들을
내가 헤쳐나갈 수 없다면 또 다른 짐이 될 것 같았다.
내 어깨의 짐은 더 이상 올리고 싶지 않다.
지니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눈부시게 빛을 뿜으며 사라졌다.
꿈이었다.
기분 좋은 꿈.
지금 나에게 지니가 다녀간 건가?
어제 스콘 때문에 정말 지니가 왔다고?
소원이 진짜 이루어지는 건가?
어리둥절했지만 어제의 행복은 나의 꿈마저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래, 남들이 뭐라 하든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
나만 행복하면 되지 뭐.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