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 걸까? 두 번째 이야기
돌아보면, 줄눈과 코팅 시장은 3~4년 주기로 변화해 왔다.
기술은 진화하고, 자재는 새로워지고, 소비자의 눈도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나의 주된 업은 코팅이라기보다 줄눈 시공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 나왔다 하면 눈여겨보았다.
매일 안료들은 업그레이드되고 있었지만, 매번 구매해서 테스트해 볼 수는 없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리스크를 안고 가는 일이고, 그 리스크는 다양한 현장에서 나오는 변수를 감수해야 했다.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다양한 안료와 줄눈재를 사용해 보고, 예상치 못한 하자가 생기면 직접 쫓아다니며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왜 이런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냥 익숙한 것을 하자'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2021년, 에폭시 줄눈이 입주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줄눈은 폴리우레아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일까,
에폭시는 내 영역이 아니다, 줄눈시장에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 하며 지켜보고만 있었다.
입소문은 났고 하나둘 시공을 시작했지만, 입주박람회에서 에폭시를 홍보하는 업체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역시, 처음엔 나도 불호였다.
첫째, 너무 비싼 단가였다.
자재도 시공비도 높았다. 줄눈 시장은 과도한 경쟁으로 단가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기에, 과연 고객이 2~3배의 금액을 지불할까 의문이었다.
둘째, 너무 긴 경화 시간.
유리막 코팅 시공 시 경험했던 하자 발생 우려가 떠올랐다. 3일 이상 출입이 없어야 하는 경화 시간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아파트 하자팀의 출입, 입주 일정 등 변수는 너무 많았다.
셋째, 나는 마루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과거 타일러들이 시도한 에폭시 줄눈은 갈변 등의 하자가 있었고, 신축 아파트의 특성상 AS 자체가 번거롭고 어려웠다. 자칫하면 타일 전체 보상이라는 리스크도 있었다.
넷째,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시공 시간도 폴리우레아보다 2~3배 더 들었다. 같은 시간에 폴리우레아 두 집을 시공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만들어내며 도전을 피하고 있었다.
익숙함에 속아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업체들의 시공 사진과 해외 시공 동영상을 검색하며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인터넷은 방대했다. 가봐야 할 곳도,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나는 세상에서 좁쌀만큼이나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무턱대로 단점만 나열하며 다른 종류의 줄눈재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스스로도 답답해 보였다.
줄눈을 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국내에 출시된 줄눈재는 알고 있어야 한다.
시공법을 익히고, 현장에 맞는 제품을 고객에게 추천할 수 있어야 하며, 나에게 맞는 제품은 익히고 다뤄봐야 한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답변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에폭시 시공을 시작하다. 폴리우레아와 에폭시로 각 가재별 장점에 맞는 시공을 맞춤 설계하고 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교육기관에 전화를 걸어 가장 빠른 일정으로 등록했다.
교육을 받고, 우리 집 줄눈을 뜯어내고 새로 시공하고, 친구 집에도 가서 연습했다.
입주박람회를 준비하며 샘플을 만들고, 광고와 스크립트도 함께 구성했다.
에폭시 관련 자료를 모으며, 우리가 사용할 총알(줄눈재)을 다듬었다.
에폭시 자재를 모두 들여왔다. 사람들은 안된다고 했다.
“지금 사놓을 필요가 있냐”, “그 비싼 단가로 누가 하냐”, “어차피 취소될 거다”라는 말도 들었다.
실제로 3~4번의 행사는 매출 0원이었다.
에폭시 줄눈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비싸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안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무슨 방법이 없을까?
UV를 처음 도입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회사의 이미지와 신뢰도가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느끼고 생각했었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래서 광고를 다시 구성했다.
고급스러운 콘셉트로 제목부터 새로 짜고, 고객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순서대로 콘텐츠를 배치했다.
읽는 것만으로도 내 집이 명품이 되는 느낌이 들게 만들고 싶었다.
"벤츠는 하차감으로 탄다"는 말처럼,
벤츠 같은 줄눈재라는 콘셉트를 잡았다.
후기를 작성하는 고객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고자 했다.
1200세대 규모의 신축 아파트에서 열린 입주박람회에서 줄눈 업체 12곳 중 에폭시 줄눈 시공 업체는 우리 포함 단 2곳이었다. 그 현장에서 40~50건의 계약을 따냈다.
그 후, 에폭시 줄눈을 찾는 고객이 점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나의 광고덕이라고 볼 수 없지만, 줄눈시장의 흐름의 파도 안에 나는 몸을 싣고, 그 흐름을 타려고 노력했다. 박자에 맞춰 흐름을 탈 수 있었던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자재 업체에서 만난 한 사장님은 나 때문에 교육을 받으러 왔다며 인사를 했다.
“에폭시 문의가 너무 많아져서 하루라도 빨리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교육에 등록했다고 했다.
일은 여전히 고되고 힘들지만, 수익은 좋아졌고, 저가시공을 지양하는 업체들과 차별화를 두었다.
지금은 입주박람회에 나오는 거의 모든 줄눈 업체가 에폭시 시공을 한다. 안 하고 싶어도 찾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하는 업체들도 있다. 어떻게 시공을 하느냐, 하자처리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어떻게 시공을 해야 하는지 도대체가 감이 안 온다며 현장을 한번 보러 와도 되겠냐고 궁금해하기도 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이제는 고객의 취향에 맞춰,
원하는 재질과 자재로,
폴리우레아와 에폭시를 부분적으로 섞어 콜라보로 시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시장도 바뀌고, 나도 바뀌었다.
그리고 시장은 계속 바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