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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눈, 3년의 주기로 바뀌는 시장(나라는 사람의 자리)

마지막이야기: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가

by 이원희

역시나 3년이라는 시간을 에폭시 줄눈 시공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고, 실수도 하면서 데이터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같은 색상의 제품 뚜껑을 열었는데, 전혀 다른 색상이 들어 있었던 적도 있고, 에폭시가 손과 발에 묻은 채로 수전을 잡거나 문을 열어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동선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데 처음엔 헷갈려서 마루를 밟고 다니다가 발자국이 생겨서 지우느라 며칠을 고생하기도 했고, 얼굴이나 손에 묻어 알레르기가 올라와 고생을 하기도 했다.


하나하나 시시콜콜한 작업에 대한 섬세함과 경험이 부족하니 밤새도록 시공을 하고 바로 다음 현장을 가는 경우도 있었다.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고객들의 전화가 쏟아졌다. 에폭시 시공 후 나오는 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객도 나도 사진만으로는 구분을 할 수가 없어 클레임이 들어오면 바로 방문해서 해결을 했고, 눈으로 확인하며 다양한 경험을 수집했다. 고객들은 시공 후에도 궁금한 점이 많았다. "비싼 금액을 들여 줄눈 시공을 했는데, 폴리우레아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타일을 교체해야 하는데 줄눈을 제거해 줄 수 있나요?" 등 다양한 질문을 했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조금씩 나만의 노하우가 쌓여갔다. 조금씩 요령도 생기고 변수에 대한 응대스킬도 늘어났다. 나는 다양한 이슈들과 함께 성장하며 에폭시 줄눈시공은 익숙해졌고, 이제는 어떤 상황이 와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줄눈 시공을 처음 시작했을 때, 양쪽 엄지발가락이 6개월 동안 저렸다. 아무리 주물러도 저린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서 나중에 발가락을 잘라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에폭시 줄눈을 하면서 무릎이 너무 아파서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결국, 시간은 약이었다. 물론 지금도 힘들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서, 토끼걸음으로 오래 달리기를 시킨다면 누구보다 잘 뛸 자신이 있다.


처음부터 나의 몸은 기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전거를 10년 만에 타도 몸은 기억하고 탈 수 있는 것처럼, 내 몸은 힘들어도 적응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어느 시공에도 내 몸은 익숙하게 움직여질 것이다.


나는 일하면서 느끼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은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 일을 하면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되묻게 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까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하고 있다. 다양한 희생을 감수하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나의 능력, 역할, 영향력을 확인한다. 그렇게 우리는 '과연 내가 누구인지'를 구체화하게 된다. 시공 후 성과를 내고 고객의 인정을 받을 때, 자신이 유능하고 의미 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다. 칭찬과 공감들을 통해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이것이 나의 자존감을 높인다. 특히 내가 맡은 역할이 분명할 때, 나는 내 자리에서 빛이 난다. 언젠가 내가 걸어온 일의 시간이 쌓여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할 것이라 믿는다.







현재 입주시장에서 줄눈은 다양해졌다.

한 가지밖에 없었던 줄눈재는 이제 폴리우레아, 아스파틱, 에폭시, 하이드로폭시 등 다양한 제품들이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형업체들은 앞다투어 신제품을 출시하고 서로의 제품들이 좋다고 홍보하고 있다.

각자 제품에 대한 단점은 숨긴 채 장점만 위주로 설명하고, 과도한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과연 3년 후에는 또 어떠한 흐름이 생길지, 나는 어디에 있을지 기대된다.


내가 처음 줄눈을 시작했을 때에도 아파트가 후분양으로 바뀌면서 입주박람회가 없어진다. 줄눈, 탄성시공은 건설사에서 직접 시공을 하게 되어 개인사업자로는 줄눈을 시공할 수가 없다. 등등 다양한 유언비어들이 많았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줄눈시공을 하고 있으며, 창업을 문의하고, 교육을 받으려고 한다. 물론 입주박람회도 여전히 하고있다.


은퇴를 하면 치킨집을 오픈하고자 했던 이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MZ세대들도 경단녀들도 기술을 배워 창업을 하려고 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아졌음을 느낀다.


여전히 나는 여자임에도 이렇게 일을 하고 계시나요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다행히도 고객들의 인식이 많이 좋아지고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해낼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려고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나를 흔들었던 지난 두어 달 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은

도대체 너는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으냐였다.


내가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

그렇게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유통하는 업체들의 경쟁은 시작되었고, 나는 그들의 고객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잘났어요라고 영업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줄눈재는 정말 많이 다양해졌고, 나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안에서 또 살아남아야 하기에

흐르고 있는 줄눈시장의 파도에 몸을 싣는다.

그 흐름을 타고 박자에 맞춰 흐름을 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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