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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 둘째에게 용돈을 돌려받았다.

자전거 대신 아이패드를 산다는 아이.

by 이원희
우리 집 부동산 재벌이 될 둘째


둘째 녀석은 어릴 적부터 혼날 짓을 하지 않았다. 둘째라 좀 더 너그러웠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 탐색전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만지거나 높을 곳을 가거나 입으로 넣거나 하지 않았다.

어릴 적 때를 부리는 건 오롯이 애착 베개가 없으면 (중1인데 지금도 가지고 잔다) 하얀 얼굴이 뻘게지면서 찾을 때까지 울었다. 큰소리 한번 안 내고 저절로 큰 것 같은 둘째다.


둘째는 한글도 스스로 떼고, 형이 옆에서 푸는 수학문제를 눈요기로 보고 먼저 풀어내기도 하는 등 기특한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둘째들만의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둘째를 살뜰히 챙겨주지도 못했다. 이혼을 하면서 나를 아주 많이 경계했고, 내손 한번 잡아주거나 눈길을 준 적도 없었다. 마냥 엄마가 미운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난 안아주려다가도 휙 돌아서는 둘째 뒷모습만 보고 가슴앓이를 해야 했었다.


둘째 육아기


뱃속에 있을 때는 내가 10달 내도록 입덧을 해서 만삭의 나의 몸무게는 52킬로에 불과했으나 감사하게도 무럭무럭 잘 자라 건강하게 어디 하나 부족하지 않게 태어났다.

호주비자가 리젝 된 직후의 돈 없던 시절이었기에 태교도 제대로 못했고 먹고 싶은 것도 좋은 것이라고 사 먹지도 못했다. 오직 태교라곤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을 무작정 걷는 것이 전부였었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라곤 걷는 것 밖에 없었으니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더우면 더운 데로 땀을 흘리며 계속 걸었다.


그런 둘째가 태어나고, 나는 몸조리 30일을 못 채운 채 오전에 5시간 콜센터에서 연금보험을 팔았다. 최소 100일은 젖을 물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에 젖을 물리고, 중간에 한번 유축을 하거나 아픈 가슴을 안고 부랴부랴 집으로와 젖을 물렸다. 고생하는 나도 둘째도 보기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100일이 되자마자 바로 모유수유는 끊게 했다. 그 뒤로 둘째는 내손에서는 잠을 자지 않았다. 자다가 깨서 울 때도 할머니손에서만 울음을 그쳤다. 나에게 애착하지 않는 것이 내가 뱃속에 있을 때 너무 나쁜 맘을 갖고 있어서 그런가 싶어 마음이 아프고 또 아프다. 생각만 하고 있어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유치원을 처음 등교하고 낮잠을 자야 하는 시간에 애착배게가 없으니 떼를 부리고, 그 성질을 감당할 수 있는 선생님은 없었다. 결국 악착같은 할머니가 같은 시간 베개를 가지고 가서 재우고,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안정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이혼, 경계 그리고 변화


예민하다고만 생각한 둘째가 초등학교 3학년때 이혼을 하고 세종으로 이사를 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부모의 이혼이라는 것에 대한 혼란기를 2년 정도 거친 것 같다. 많이 신경질적이었고 대화도 잘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하는 나는 집을 비우기가 일쑤였다. 이혼 후 안정적인 삶을 위해 온 이사였지만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이후 나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 (참고: 이혼, 이혼 ing 브런치 북중 https://brunch.co.kr/@amorfati-www/68)


둘째의 생각으로 부모의 이혼이 정리되고 마음의 안정을 조금씩 찾게 되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많이 바쁘게 일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 혹은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둘째가 4학년 때 학부모 참관수업 때 나를 보고 활짝 웃었고 품에 들어와 안겼고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망 좋은 카페를 가고, 계곡을 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째의 친구들이 엄마가 멋있다며 함께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나와 같이 밥을 먹고, 카페도 가고, 볼링도 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성격이 나와 비슷해서 대화는 금세 잘 통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늘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이가 되었다.


요즘 우리 둘째


일한다고 밖에 있으면 늘 나의 식사를 걱정하고, 사랑한다고 먼저 말해주는 녀석.

본인의 MBTI는 cute라고 하고, 졸업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아무도 모르는 중학교를 갔었으면 새로운 친구들과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둘째. 내가 비트코인을 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가상 주식게임을 하면서 100만 원을 2,3배 늘리며 증권 뉴스를 나와 공유한다. 아파트값을 계산해 보더니 이런 아파트 한채만 있으면 부자가 될 것 같다고 부동산 재벌이 꿈인 내 사랑 둘째.


학창 시절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고 재미있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는,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데, 요 녀석이 지겹다고 2년을 다니던 연산학원은 그만두더니 갑자기 수학학원을 보내달란다. 들어가는 건 네 맘이지만 나올 때는 네 맘만으로는 그만둘 수 없다고 했는데 하루에 4시간씩 방학 때는 거의 매일 5,6시간씩 수학학원에만 붙어있는다. 학원에 전화를 해, 애 진 빠지는 거 아니냐고 밥도 안 먹고 학원에만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선생님께 여쭤봐도, 원오는 요지부동 본인이 해야 하는 건 해야 한다고 밥 먹고 오라고 해도 간단히 간식만 먹고 문제집을 붙들고 있는단다. 선생님은 그런 원오의 성적이 오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계속 옆에서 코치를 해주고 계신다.


첫 번째 대망의 중간고사를 보았다. 열심히 했지만 긴장했는지 점수가 생각보다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세종에서는 제일 시험이 어렵다는 학교라 선생님께서는 기출시험 때 성적보다는 못 미치지만 생각보다 잘 나온 점수라 좋다고 하셨고, 나 역시도 그 점수가 0점이었어도 만족했으리라. 본인만 만족을 못해서 끙끙 앓았지만 말이다. 기말고사를 준비는 더 단단히 하더니 이번에는 그래도 100프로는 아니더라도 만족스러운 점수가 나왔다. 평균을 깎아먹는 영어점수가 이번엔 거슬렸다. 다음 시험은 영어도 어느 과목 하나 부족하지 않게 준비를 하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용돈을 모아 자전거를 사겠다더니, 아이패드를 사야 한단다.


자전거를 사고 싶다고 용돈을 모으던 아이가, 이젠 그보다 아이패드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어 공부를 위해서라며... 이런 기특할 때가, 그냥 사달라고 해도 사주었을 텐데..

내가 이런 거 멋지게 플렉스 하려고 돈을 버는 거니까 괜찮다고 해도 그러면 내가 용돈을 모으는 의미가 없다면서 끝까지 나의 계좌를 물어 40만 원을 입금했다. 한 달 용돈 8만 원이면 5개월을 쓰지 않고 모았다는 의미다. 의미 없는 소비보다는 의미 있는 소비를 선택하려는 둘째가 대단하다.


요 신통방통 한 녀석을 어찌해야 할까, 뭘 해도 될 녀석 같아서 팍팍 지원을 아낌없이 하려면

나는 열심히 돈을 벌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또 한 번 다짐한다. 어디 나가면 청년 같은 중학생1학년이 나보다 더 커져버린 몸을 웅크리고 엄마품에 들어와 안겨서 뽀뽀하며 애교를 떠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짠하기도 하면서 예쁘기도 하면서 언제 이리 컸나 싶기도 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하얀 얼굴로 칼국수를 들고 먹으며, 렛잇고를 목청 터져라 부르고, 춤추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천천히 커라 하다가도 빨리 커서 나랑 놀러 다니자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리 커서 나에게 용돈을 돌려주다니 감회가 새롭다.


그렇게 그는 커가고 있다.

어디 내놓아도 뭐든 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해준 것도 없이,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는데

애잔하고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의 곁에서 작아지기만 하는 엄마다.

내 심장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녀석.

오늘도 보고 싶고, 내일도 보고 싶은

땀냄새가 풀풀 나도 안고 있으면 너무 사랑스러운 둘째.


내 둘째

내가 제일 사랑하는 두 번째 기적.

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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