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눈쟁이의 하루를 카메라(영상)로 기록하다.
카메라 앞에서 줄눈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사진을 찍어도 실물보다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고 느끼는 나인데, 하물며 영상에 담길 내 얼굴이라니... 쑥스럽고 부끄럽고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우연히 소개로 연결된 갈간남과의 만남을 결정할 때까지는 두어 달이 걸린듯하다.
나는 막연하게 내가 살아가는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상상하기를 즐긴다. 그 상상은 곧 나의 행동의 원동력이 된다. 내가 겪는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헤쳐 나아갈 수 있는 방법도 준비된 나의 상상에서 나오기도 한다.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행동할 수 있는 나의 준비된 것들은 나의 삶의 윤활유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축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돈이 조금씩 쌓여갈 때마다 나를 여유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하루도 쉬지 않고 저축을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이 될지 모르니까.
이전에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교수님이 추천하신 신생여행사에 취업을 할 때 나의 월급은 5분의 1 토박이 났었다. 남들이 말려도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기분이 좋았다. (생각해 보면 철없던 시절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여행사 사무실에 출근을 앞둔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미국비자를 받는 것이었다. 경력도 없는 내가 뭔가 기회라도 잡으려면 뭐라도 준비를 하고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벌써 20여 년 전이니 그때만 해도 미국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 유지된 잔고 증명과 불법체류를 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신분이 확인되어야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서류준비는 어렵지 않았다. 준비된 서류를 제출하고 미국대사관에 가서 간단히 대면 인터뷰를 하고 비자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미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그 10년짜리 비자는 써보지도 못했다. 구여권이 없어지면서 그 여권도 폐기했지만 난 그때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비자를 받았던 경험을 후회하지 않는다. 여행사에서 근무할 당시 미국비자받은 직원이 없었기에, 그 경험으로 비자상담을 할 수 있었다.
갈간남의 유튜브 촬영은 내 인생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툭' 튀어나온 이벤트였다. 나의 쑥스러움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날 알게 되는 일, 공개적으로 내가 오픈된다는 것은 책임과 시선이 따라온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이 안 나왔다. 그리고 나의 줄눈 경력 12년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 건지, 내 직업을 소개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조차도 솔직히 감이 오질 않았다.
머릿속으로 출연을 한다면, 청사진을 그려보았다. 훗날 혹시나 촬영하지 않으면 후회할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내가 바디프로필을 찍었을 때도 나의 가장 젊고 튼튼한 몸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평생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아서 감행했었다. 나의 줄눈경력 12년, 그 시간 영상으로 남기는건 어떤 의미가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있는 그대로의 줄눈쟁이 모습을 전문가와 영상으로 남길 수 있는 일이 흔치 않은 경험이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의 일이 기술과 영업력이 필요하니 나의 영업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했고, 그 이유도 촬영을 결정하는데 큰 몫을 차지했다. 영상을 통해 나를 브랜딩 하고 내가 그린 청사진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줄눈쟁이의 모습이 담긴다면 분명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촬영을 결심했다.
갈간남에게 연락을 받았고, 촬영날짜를 잡았다. 목포에서 찍기로 했던 영상은 개인 사정으로 조금 미뤄져 구미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촬영 전 통화로 간단히 갈간남과 인터뷰를 했다. 준비된 질문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궁금하거나 촬영진행에 관한 순서를 정하기 위한 인터뷰였던 듯했다. 이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32.3만 명의 구독자가 실제로 어떤 숫자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막상 당일아침 현장을 가는데도 뭔가 집중이 안 되는 듯 떨렸다. 보통은 고양이세수하고 선크림만 바르고 현장을 가는데, 그래도 촬영을 한다니 예의상 화장이라도 해야 하나 싶어 거울 앞에 앉았다가 무슨 현장직이 화장 인가 싶어서 눈썹만 손질하고 일어났다.
'그냥 하던 대로 하자.' 기술자는 현장에서 몸으로 증명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건강한 미소를 가진 유쾌하고 젊은 분이었다. 처음 만났는데도 어색하지 않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능력이 있는 분이었다. 아마도 그의 직업정신이리라.. 처음엔 쑥스러워서 눈동자가 어디로 가는지도 가늠도 되지 않았다. 자꾸 쑥스러워서 웃기만 하는 나에게 그냥 카메라 안 봐도 되니 편하게 이야기하라며 나를 카메라 앞에서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리드했다. 순간순간 내가 지금 제대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긴장해서 질문을 잘못이해하고 엉뚱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생각보다 작은 소형카메라와 20센티정도 돼 보이는 마이크가 달린 것이 촬영장비 전부였다. 너무 화려한 장비였다면 나도 더 긴장했을 것 같다. 작은 카메라로 소리까지 담아진다니 그것도 신기했다. 갈간남은 작은 노트에 나와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도, 시공하며 움직이는 나의 작은 행동들도 유심히 살피며 메모했다. 그리고 그 메모들에서 끊임없는 질문들이 줄줄 나왔다. 에폭시와 폴리우레아 시공을 나눠서 줄눈 시공의 작업 순서를 간단히 설명해 드리고, 나는 평소처럼 일을 했다. 갈간남은 나의 시공이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계속 지켜보며 촬영을 했고, 계속 말을 걸듯 질문을 했다. 작은 질문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진심에서 나온 대화로 이어졌다. 나중에 영상을 보니 혹시나 대사를 준비하거나 했다면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계속 긴장한 모습으로 대사를 기억하느라고 고생하지 않았을까.
그는 진심으로 줄눈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하는 모든 공정을 카메라에 담아 가길 원했다. 심지어 내가 먹는 샌드위치와 커피까지도 줄눈쟁이들은 이렇게 식사를 간단하게 하는지 연관해서 물어보았다.
폴리우레아와 에폭시의 차이점은 뭐예요?
지금 하시는 건 어떤 작업인가요?
시공 금액은 폴리와 에폭시의 차이가 있나요?
As가 생기면 어떻게 하시나요?
안 힘드세요? 아픈 곳은 없나요?
테이핑은 안 하시나요? 직접 주입하시는 거예요?
지금 줄눈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이미 줄눈을 배우고 있거나 혹은 줄눈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조언,
나의 영업 노하우까지 다양하고, 객관적인 시선에서 영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나는 웃기도 했고, 내 줄눈 인생을 잠시 돌아보기도 했으며, 나의 진솔한 마음과 생각했던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촬영하는 내도록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끝까지 나는 쑥스러웠다. 줄눈 시공의 자재별 차이점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업체별 자재의 차이를 묻는 거로 이해하고 엉뚱한 답변을 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동선이 꼬이면서 걸레를 두 번 빨기도 했다. 그래도 갈간남은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며 끝까지 자연스러운 모습을 영상을 담았다. 마치 아는 동생이 궁금해서 현장에 와 이것저것 묻는듯한 편안함이 있었다. 처음엔 나도 긴장해서 단답으로 대답하기도 했으나 점차 담담하고 솔직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촬영 후 걱정되는 딱 한 가지가 있었다. 혹여나 아이들이 영상으로 나를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이 엄마가 노가다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상처를 받을까?
나는 직업의 귀천은 본인 스스로가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본인 스스로)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이 일이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다수의 선입견과 편견에서 맞서 아이들 대신 내가 싸워줄 수는 없다. 지금도 나 역시 여자 기술자, 혹은 현장직이라는 이유로 편견 앞에 설 때가 있으니 걱정스러웠다. 내가 기술을 배워서 오랜 시간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일을 하고 있다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영상을 보며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런데 그런 마음을 느꼈진 건지, 갈간남이 가족들한테 미안한 마음과 보고 싶은 마음을 '일하는 엄마의 화이팅'으로 유쾌하게 담아주셨다. 막내딸이 나의 동영상을 보고는, 본인과 영상통화로 수학숙제 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나인지 다 알겠더라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멋있다는 말을 해주어서 고마웠다.
갈갈남은 내가 시공하는 줄눈이 완성되는 것을 보며 말했다. "확실히 줄눈 하니까 예쁘네요"
"맞죠, 집도 여자도 돈들이면 예뻐져요" 이렇게 얘기하며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는 줄눈시공이 완성된 모습의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했고, 나는 그가 정확한 핵심을 짚어주어서 고마웠다.
생애 첫 내 집마련은 돈이 많이 든다. 계약금부터 중도금. 이자. 잔금까지 적게는 몇억 원대부터 수십억 원까지. 그런데 새 아파트인 줄 알고, 인테리어는 필요 없고 깨끗하고 밝은 내 집을 상상한 고객들은 먼지 쌓인 헌 집 같은 새집을 보고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은 더 특별하고 깨끗하고 예쁜 그 무언가를 원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 그의 부흥하는 첫 인테리어가 줄눈시공이다.
줄눈은 예뻐서 많은 분들이 시공한다. 내 맘대로 원하는 컬러로 선택할 수 있다. 인테리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시공할 수 있다. 늘 밟고 지나다니는 현관, 물을 쓰며 곰팡이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욕실타일에 하는 시공이라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시공이다. 줄눈은 작은 변화지만, 큰 만족을 주는 시공이다. 그 만족을 위해 나는 오늘도 손끝으로 시간을 깎아낸다.
내가 처음 박람회를 들어간 10여 년 전에도 박람회가 후분양으로 없어질 수도 있다. 건설사옵션으로 줄눈시공을 개인업자가 할 수 없다 등 수많은 소문들이 있었다. 그런 소문에도 나는 12년 차 줄눈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줄눈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더 많아질 것이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무림은 더 치열 해질 것이다. 나는 줄눈쟁이로 지금까지 버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점점 더 많아지는 줄눈쟁이들 사이에서 나는 나만의 색이 입혀진 '아지트'라는 공간에서 또 다른 시작을 했다.
나는 그 안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천천히 조금씩 시도해보려고 한다. '기술이 머무는 공간' 나의 아지트, 우리의 아지트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라이프의 청사진을 그려본다.
줄눈은 내가 핸드메이드로 만드는 제품이다. 나의 노하우 역시 12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다.
내 몸에 익힌 다양한 기술, 내 마음에서 나오는 고객응대와 마케팅.
툭! 하고 치면, 탁! 하고 받아칠 수 있는 나만의 고유 기술.
그 모든 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어렵겠지만
나는, 그렇게 기록하고 써 내려갈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일이고, 계속 살을 붙여나가며 앞으로 더 단단해질 나의 이름이 될 것이다.
'풍성한 삶을 꿈꾸는 글 쓰는 줄눈쟁이 이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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