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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가르칠 수 있어도, 각오는 네 몫이다.

3개월 차 줄눈쟁이가 내게 물었다.

by 이원희

3개월 차 줄눈쟁이가 내게 물었다.


"이사님은 다른 사람 몇 명이나 교육했어요?"


흠..

교육이라고 거창하게 해 준 것도 없지만, 독립까지 한 분도 있고

순수하게 기술만 알려준 친구도 있고.

현장을 보러 와서 본인이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찾아간 사람도 있으며,

줄눈이 아닌 코팅교육장을 하면서 10명이 가까운 이들이 교육을 받아갔다.


그중 한 명은 나보다 더 큰 업체로, 그중 여러 명은 아직 현장에 있다.

지금 나와 함께 일을 하는 친구도 있으며.

다른 곳에서 배우고 나에게 다시 찾아와 배우고자 했던 이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진심이었다.


잔소리를 할 때도 있었고,

혼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을 이해가 될 때까지 이야기를 해본 적도 있었고

(물론 그 사람은 '싸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내 잔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박차고 나간 놈도 있었다.

그들과 일하다 웃겨서 배꼽을 잡은 적도 있고,

한 개를 알려주면 열을 이해하던 기특한 친구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그 친구는 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을까.

내가 못 미더웠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빡세게 굴렸던 걸까?






우리 일이 처음엔 참 어렵다.


"내가 이런 것도 못했나" 싶은 자괴감에 빠지고.

손이 맘대로 안 움직이지 싶어 스스로 자책하기도 한다.


3개월 차가 접어들면,

이제 좀 '할 줄 안다'라고 착각하기 시작하는데

아침마다 허벅지 어딘가에는 파스를 붙이고 있어야 하고,

다리엔 알이 배겨서 절뚝거리는 신세가 되어있어야

현장에 진심이라고 볼 수 있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고, 아킬레스건이 욱신거리고 있을 터이다.

매일 밤 쥐가 나는 다리를 부여잡고 아침에 출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매일 등이며 머리를 모서리에 박아서 구멍이 나봐야

현장 냄새를 좀 맡고 있구나 할 수 있다.


나는 12년을 꼬박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내일 시공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리고 출근하기 전 주문을 외운다.


"오늘은 에어컨도 먼저 틀어주는 착한 고객을 만나게 해 주세요.

백시멘트는 순두부같이 약했으면 좋겠고요"







3개월이라는 시간은 어느 회사든 '수습'이란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줄눈쟁이의 3개월은 진짜로 이일을 스스로 할 수 있을까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쓱쓱 --

쭉쭉 --

마냥 쉽게만 하고 있는 것 같은 내가 대단해 보이거나

혹은 별것도 아닌 것을 시간을 끌며 안 알려준다고 착각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줄눈은 기술만 배우면 돈이 술술 들어갈 것 같은 일이다.

빨리 배우고

익숙해져서 독립을 하고 싶다.

그래서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허드렛일만 시키는 것 같고,

as는 귀찮은 일이고,

질문은 늘어난다.


"저도 한번 해볼게요."

반짝이는 눈으로 마치 완벽한 라인을 낼 수 있을 것처럼.


10분이 지나도,

30분이 지나도,

한 시간째 그 자리다.

내가 했다면 3분, 물티슈 한 장이면 마무리가 되었을 일이다.


물티슈 한통을 다 써가며 왔다 갔다 줄눈재를 몇 번을 다시 타는지 모른다.

등지고 몰래 일하는 그에게 다가가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


"뭐 해?"

"될 것 같으면서... 안되네요."



이제 10번 헤라 잡은 사람이 10년 헤라 잡은 사람이랑 똑같이 할 수 있겠냐고.

그게 가능했다면

누가 비싼 돈 주고 시공을 맡기겠나,

그렇게 쉽게 쓱쓱 될 것 같았으면

누구나 셀프시공을 하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삼키며


"처음 한 거치고는 잘했네"


사실은 다 뜯어버리고 다시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내가 다 뜯어버리고 새로 하고 싶었다는 것을?






나는 늘 이야기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도 잘할 수 있다"

다만, 기공까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현장밥은 1년을 먹어야 하고.

독립까지는 2년 버텨야 하며,

영업까지 하려면 도합 3년을 채워야 한다.

(물론 더 빨리 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숫자가 아니라, 그만큼의 시행착오와 버팀을 뜻한다.)


똑같은 아파트이고, 같은 라인의 위아래집이라도

백시멘트가 다르고, 줄눈의 간격이 다르다.

실리콘의 모양도 습도도, 냄새도 모두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객의 성향과 기질, 원하는 것이 다르다.


그 모든 경우의 수를 익혀야 한다.

영업도 능력이고 건강관리도 능력이다.

기술도 능력이고 자재를 아끼는 것도 능력이다.

우리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절대 혼자서 버틸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런다.

"기술은 배우고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우면 된다"라고.


하지만 요즘은 고객도 상향평준화가 되었다.

줄눈의 정보가 넘쳐나고, 누구나 전문가처럼 말한다.

순차적인 기술의 과정을 무시한 채 모두 '기공의 시공'을 원한다.


그래서 매일,

생기고 사라지는 줄눈쟁이들이 넘쳐난다.

나 역시도 새로 생겨나는 안료나 줄눈재에 관하여 보고 또 봐야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배워야 한다.





누군가는 내게 물었다.


'너의 기술을 모두 가져가면 너는 어떻게 먹고살아'


나는 대답했다.


"지금까지 내가 하는 일을 100프로 전달하고 싶어서

200프로 열정적으로 가열차게 알려줬다고 생각했는데

100이 아니라 50도 못 따라 하더라."


내 걸 다 가져가서 잘되며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일 배워서 지금 잘 나간다 소리를 듣고,

나에게 인사라도 하러 오면 땡큐다.


지지고 볶고 나가서 지지리 고생하다가 나한테 전화해서 다시 일 배우고 싶다고 들어온다고 하면

그것도 땡큐다. 그럼 이전보다는 더 열정페이가 생겼을 테니까.


많은 사람들을 겪으며 나는 더 단단해졌고, 자극을 받았다.

그들이 뭐라든, 누가 뭐래도 진심으로 가르칠 뿐이다.


그런데 세상은 참 아이러니 하다.

잘될 때는 "고맙다"라고 하던 사람들이,

안 될 때는 또 뒤에 돌아서서 욕을 한다.


... 정말 웃기지 않나?

누가 시켰다고, 내가 시켰나?

배우고 싶다고 그렇게 사정할 때는 언제고,

내 덕에 돈 벌고 있을 때는 인연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말이다.


그게 세상인가 싶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을 겪으며 세상을 배우고 있는 건가,

아니면 기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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