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법칙은 책상에도 있다

깨진 창문의 법칙도

by 유프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정돈된 공간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정돈되지 않은 공간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맥시멀 하게 사는 것도 습관이다. 오늘은 그나마 짐이 적은 사무실 자리를 정리했다. 사실 한 두 달 전에 살짝 정리했었다. 그럼에도 오늘은 쓰레기통만 두 번을 비웠다. 많이 버린다고 버렸는데 여전히 뭐가 많다. 확 깨끗이 버리지 못하고 책꽂이나 수납장을 벗어나 있는 것들이 자리 잡을 수 있을 정도로만 정리했다. 생각해보면 나의 정리는 항상 이 정도 까지였다. 스스로 정리가 필요하다 생각이 들면, 빈틈이 나올 때까지가 아니라 자리 잡지 못한 물건들이 안 보일 때까지만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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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전(위), 후(아래)>


나름 정리를 하긴 했는데 썩 만족스럽진 않다. 정리를 잘 안 하게 된 것이 생각해보면 정리할 것이 많을 때까지 방치했기 때문이다. 정리가 일처럼 느껴지니 맘먹고 시간 날 때 해야 하고, 막상 일하다 보면 정리할 시간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치우다 보니 몇 년전엔 중요했지만 이제는 필요 없는 것들도 많았다. 지금도 다시 찾아보면 다시 볼일 없는 자료들이 꽤 나올 것 같다. 1차적으로 자리를 정리하며 느낀 것은 2가지다.


1. 평소에 자료가 생기면 쌓아두지 말고 바로바로 정리한다.

정리가 일이 되지 않게 하자. 지금도 다 정리된 상태는 아니다. 빈틈이 없다. 잠깐 보관해야 할 자료들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러면 또 다시 쌓아둬야 한다. 이대로 두면 내가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까지 다시 쌓고 쌓다가 정리할 것이다. 나중에 보겠지,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는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정리가 필요한 상태가 계속 유지될 것이다.


2. 자료는 보관이 아니라 활용이 목적이다.

버린 자료들을 살펴보니 나름 당시엔 중요했고, 보면 좋을 법한 자료들이다. 그런데 보관에 대한 안심 탓인지 내용 숙지는 완벽하게 되진 않은 것들이었다. '나중에 보겠지'가 아니라 최대한 머리에 넣는 것이 먼저다. 받기만 하면 보지 않게 된다. 자료는 보관이 목적이 아니라 활용이 목적이다.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지켜지기 어려운 것처럼, 나중에 보자는 나와의 얘기도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같은 공간이어도 정리가 필요한 시점, 더러움에 대한 역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상태로 오래 살아오면 그 정도가 나의 기준이 된다. 엔트로피 법칙처럼 점점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간다. 누구한테 깨끗이 보이기 위해 정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단추를 풀고 먹으면 다시 채우기 어렵다. 다시 군더더기 살을 빼려면 더 노력이 필요하다. 안 써도 될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별도 정리 시간이 길게 소요되지 않을 정도로 늘 가벼움을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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