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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by 유프로

사무실 서랍장과 내 방 책상 서랍장을 정리했다. 사무실 서랍장엔 참 별게 다 있다. 사실 평소에 잘 열지도 않는다. 차마 사진으로 인증하기도 부끄럽다. 세미나 참석 시 받은 명찰은 왜 아직도 갖고 있었을까. 또 3단 서랍 칸칸마다 공통적으로 나온 물건이 있다. 바로 봉투다. 종이봉투, 지퍼백 종류 불문하고 고이 접어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끔 내가 어떤 물건을 담아가거나, 가방 없이 다니는 분들께 제공하여 도움이 된 적도 있다. 하지만 없어도 되는 것 들이다. 물건을 살 때마다 봉투를 자주 받는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봉투를 자주 사용하지도 않는다. 봉투가 왜 이렇게 많은지 신기할 따름이다.


미니멀 라이프나 정리할 때 필요한 것은 물건을 내 공간으로 들이지 않는 것이다. '두면 언젠가 쓰겠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욕심이자 회피형 행동인 것 같다. 내게 필요한 지 아닌지 판단을 미룬 것이다. 비슷한 용도의 물건을 여러 개 보관하고 있을 이유도 없다. 전쟁 중이라도 이렇진 않겠다.


주석 2020-07-08 104214.png


더 환장하겠는 것은 당연히 내 방 책상 서랍이다. 첫 번째 책상 서랍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아마 중학생 때부터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이다. 편지의 주인공과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친구도 있고, 멀어진 친구들도 있다.


인연이 다한 사람들과의 편지를 솎아 내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이 많은 것을 하나하나 다 보면서 골라내야 할지 한꺼번에 버려야 할지 아직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예전에는 가끔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했는데, 사실 이제 나를 위로하는 것은 과거의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들여다 본지는 오래되었다.


편지도 선물도 내가 줄 때를 생각해보면 그 순간이 중요한 것이지 오래오래 보관하며 기억하길 바라진 않는다. 물론 선물을 고를 때 그 사람에게 오래도록 유용하길 바라는 욕심은 있지만, 사용과 보관은 그 사람의 몫이다. 내가 받은 편지들도 내 몫이었다. 내게 편지나 선물을 갖고 있냐고 물어보거나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도 확인하지 않는다. 글을 쓰다 보니 정리할 시간임을 깨달았다. 편지를 준 친구들에게 직접 연락을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것이 낫겠다.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는 서랍 안에만 머물러 있는 호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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