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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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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정 Aug 12. 2024

그릇이 깨지던 날

내게 머문 마음

   순식간에 손에서 미끄러진 그릇은 제일 가까운 접시에게로 온 몸을 던졌다. 식탁에서 이루어졌다면 더 황홀했을 만남은 개수대에서 성사되는 바람에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끝났다. 격렬했던 만남으로 이가 나간 그릇은 더 이상 식탁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나에게 간택 당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버려지게 되다니! 깨진 그릇 조각을 치우며 짧았던 우리의 만남을 혼자 아쉬워해 본다.      


  나는 살림살이들을 좋아한다. 그릇이며 조리도구를 좋아하고 부엌이라는 공간 자체를 애정한다. ‘살림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느낌도 좋다. 여러 가지 살림살이 가운데 그릇은 단연 으뜸이다. 매일 내 손길이 닿을 뿐만 아니라 작은 사이즈에 비해 식탁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이 크기 때문이다. 백화점이나 아울렛에 가면 꼭 그릇 코너를 둘러본다. 새로 나온 디자인이 있는지, 내 취향의 그릇은 없는지 유심히 본다. 흰색의 그릇들을 주로 사용하며 셋트가 아니더라도 이것저것 매칭하길 좋아한다. 요즘은 꼭 흰색이 아니더라도 내게 없는 모양이거나 나의 마음을 움직이면 데려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검정색 그릇을 구입하기도 했고 진한 쑥색의 그릇이 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세월이 쌓여가며 나의 그릇장은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졌다. 아직도 나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지만 젊었을 때 보다는 확실히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접시가 있어도 손이 가는 접시는 정해져 있다. 그것은 모양이나 색깔, 재질 등이 내가 선호하는 부류의 것들이다. 어떤 것들이 내 손에 자주 잡히는지 이제는 감이 온다.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것도 좋아하지 않으며 브랜드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지가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우리가 흔히 ‘취향’ 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 말이다.     


  나는 접시를 사면 그릇장에 고이 모셔두기 보다는 열심히 일 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그릇장에 있는 모든 접시들이 되도록 많이 일하기를 바란다. 고요히 앉아 쉬고 있는 꼴을 보지 못하고 자주자주 내 손에 붙잡혀 식탁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식탁에서 음식을 품고 그 고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 주기를 고대한다.      


  내가 아끼던 그 접시는 타원형이었다. 동그란 모양보다 타원형의 접시를 선호한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색은 흰색이었고 가장자리에는 음각으로 무늬가 있었다. 그 브랜드의 그릇을 몇 개 쓰고 있었는데 잘 깨지지도 않고 식기세척기에 돌릴 수도 있어서 좋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릇들 중에서 사이즈가 다소 컸기에 과일을 깎아 담기도 하고, 잘 구워진 삼겹살과 김치를 함께 내기도 했다. 때로는 같은 브랜드의 다른 접시들과 콜라보를 하기도 했고, 메인 디쉬로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그 그릇은 자주 식탁에 올랐다. 고유의 흰색으로 여러 음식들을 빛나게 해 주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열심히 일해주었다. 흰색이어서인지, 나의 취향을 잘 담아서인지 쓸 때마다 애정이 갔고, 싫증나지 않았다. 함께 한 시간들이 음식의 온기처럼 내 안에 자리했고 어쩌면 그 그릇을 두고 ‘평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날, 손에서 미끄러진 접시는 그만 운명을 달리했다. 끝부분이 다른 그릇과 부딪치며 이가 나가버렸다. 와장창 깨어진 건 아니라서 이가 나간 채로 쓸 수도 있겠지만 안전의 문제로 과감히 버려졌다. 다행히 그 그릇과 부딪친 다른 접시는 이상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의 실수로 애정이 담긴 그릇을 두 장이나 버려야 한다면 너무 안타까울 것 같았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분리수거함으로 그릇을 가져가며 잠시 숙연해졌다. 오랜 친구로 지내기를 바랐는데 우리의 만남이 너무 빨리 끝난 것 같았다. ‘평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그 순간이 잠시 아득하게 느껴졌다. 홀로 분리수거함에 남겨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만 하다 짧은 생을 마감한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했다.      


  채 마무리 짓지 못한 설거지를 마저 했다. 모든 그릇들을 다 식기세척기에 넣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말갛게 씻긴 그릇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잘 마른 그릇들을 정리해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주며 서로가 지켜야 할 거리를 정해 준다. 그릇들 사이에도 바람길이 열려 통풍도 잘 되고 넣고 빼기도 편하도록 해 주는 그들만의 거리.      


  그러던 중 어느 한 지점에서 예전보다 훨씬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무엇 때문일까? 순간 내 품을 떠난 이 나간 그릇이 떠올랐다. 그 그릇이 있던 바로 그 자리다. 그릇 하나가 없어진 자리에 더욱 풍성해진 바람길이 열렸다. 다소 비좁던 자리는 여유있어졌고 그 덕에 그릇을 넣고 빼는 것도 한결 수월해진 느낌이다. 게다가 그 그릇을 대신할 사이즈와 모양의 그릇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애정하던 그릇이 깨어져 안타깝고 아쉽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한결 간소해지고 여유로워진 그릇장이 내 마음을 개운하게 만들었다. 내게는 그 그릇을 대신할 그릇들이 충분했고 필요하다면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그릇을 사면 그만이었다. 사라진 그릇이 주는 아쉬움의 무게는 생각보다 너무 가벼웠다. 공간의 여유로움과 새로운 그릇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나를 설레게까지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릇을 깨고 비로소 행복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이가 나간 그릇은 내게 올 때도 기뻤는데 사라질 때도 기쁨을 준 셈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모두 기쁨이니 이보다 더 좋은 인연이 있었을까 싶다. 주어진 역할을 톡톡히 하고 고요히 저물어 간 나의 그릇에게 늦게나마 감사의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다. 그릇장에 쉬고 있는 그릇들을 보며 충분하다고, 이거면 충분하다고 되뇌어 본다. 그릇이 깨질 때마다 기꺼이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도 깨어진 그릇을 대신하여 새 그릇을 사지는 않았다. 그 그릇과 이별하고 수많은 날들이 흘렀지만 내게 있는 그릇만으로 충분함을 매 끼니때마다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필요하지 않은 것들로 내 주변의 대다수를 채우고 살았던 건 아닐까? 매우 중요해서 내 인생을 온통 그것으로 채우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버려야 비로소 행복해질까?     


  덩그러니 분리수거함에 남겨진 이 나간 그릇 위로 수많은 질문들이 소복히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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