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슬기 Jan 31. 2023

혼자 글 쓰면 외로울까

<소설 쓰고 앉아있네> 5화.


오후 네 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하고 말하려는데, 목이 잠겨 있어 소리 내기가 쉽지 않았다. 큼흠큼흠, 몇 번 목을 가다듬고서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왔다. 감기에 걸린 것도, 운 것도 아니고, 성대 결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인은 그것 뿐이었다.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첫 마디를 하게 된 것. 나 밖에 없는 방에서 글 쓰고, 작은 외주 작업들을 하다보면 자주 있는 일이다. 어색하지 않다. 이미 적응 완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근데 왜 또 목이 잠기고 눈물이 촉촉하게 고이는 것만 같지. 흑흑.


처음 글 쓰며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했을 때 들었던 걱정 중 하나가,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원일 땐 하루에 최소 9시간 씩, 싫든 좋든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고, 같이 밥도 먹고 해야 했는데. 그리고 그 삶에 충분히 익숙하고 잘 지내왔던 터라, ‘혼자’라는 단어는 굉장히 멀게만 느껴졌다.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컨펌하고,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출근했다가, 혼자 퇴근하는…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혼자 글 쓰고 산다는 건 무척 외롭게만 느껴졌고, ‘외로움’이라는 요인 하나 때문에라도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네 번의 다른 계절을 지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혼자 글 쓰며 사는 삶이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글이 에세이나, 시, 혹은 업무에 필요한 보고서 같은 글이 아닌, ‘소설’이기에 특히 외롭지 않았다는 것도. 


하지만 외롭지 않은 소설을 쓰기 위해 ‘몰입’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게으른 내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질이란, 타조 깃털 먼지털이로 쓰다듬는 수준에 불과 했으니. 집중력 있게 소설을 쓰는 일상이란 어쩌면 환상에 가까운 일인지도 몰랐다. 그 환상적인 일상을 위해선 길고 긴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야 하고, 그 과정이란 꽤나 고역이다. 


책상에 꾸역꾸역 앉는다. 자료 조사를 핑계로 인터넷 서핑을 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실컷 농락을 당한다. 창작자는 무릇 트렌드에 밝아야하므로, SNS를 무한 스크롤한다. 이 과정은 꽤 길다. 스크롤, 스크롤, 스크롤… 재미도 없는데 그렇게 무한정 스크롤을 하다보면, 갑자기 구매하지 않았던 생필품이 떠오른다. 쿠팡에 들어가고, 네이버 쇼핑을 검색했다가, 정신을 차리면 깜깜하게 어두워져있는 창밖 풍경과 마주한다. 외롭기도 하고 막막한 그 시간들을 지나치고 있노라면, 프리랜서로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나란 인간은 이토록 비생산적임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때때로 이 시간도 굳건히 버티는 때가 있다. 포기하지 않고 의자에 궁둥이를 딱 붙이고 앉아 있다보면, 키보드에서 타닥, 타닥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길고 좁고 캄캄한 터널을 지나고 나서, 내가 만든 소설 속 세계로 풍덩 들어가게 되는 순간이다. 


그 세계 속엔 내가 만든 인물이지만 제 멋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인간들은 대체로 정상이 아니다. 사고를 일으키고,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온몸으로 구른다. 요동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와중에 사랑을 하고, 어이없는 이유로 증오하고, 대화엔 꼭 실언을 섞는다. 


내가 만들어낸 인물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대체로 이 세계에선 관찰자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들을 받아적다보면 어느새 조악한 소설 초안 하나가 완성되어 있다. 그 사이에 외로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혼자 있는데도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 속에 있는 듯 하다. 실제로 존재하진 않지만, 존재하는 것만 같은 인간들을 충분히 그리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장담컨대, 멋진 시간이다. ‘터널’만 잘 지나간다면 보낼 수 있는 그런 멋진 시간. 


아무튼, 오늘의 나는 터널을 통과하진 못했다. 터널 너머의 인물들의 뒤통수를 떠올리며,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게 될지 궁금하긴 하지만 의지박약 글 노동자는 또 외로움과 사투중이다. ‘나혼자 밥을 먹고, 나혼자 커피 마시고, 나혼자 넷플릭스 보고, 나혼자 글을 쓰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고, 그들의 고민들을 해결해주는 시간들이 만들어준 단단한 마음으로, 소설 바깥을 살아가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글 쓰는 노동자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루 쯤 더 연장했다.


혼자 글 쓰면 외로울까? 글 쓰지 않는 시간은 분명 외롭다. 처절하게 외롭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처럼, 배구공에 찍힌 손바닥 자국에 눈코입을 그려주고 대화라도 나누고 싶은 심경이다. 터널을 통과하는데엔 실패한 오늘이지만, 그래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기대를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물론, 내일은 꼭 써야겠지만. 호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