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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암사자 Mar 13. 2023

이렇게 사는 게 어떤 건데요?

<소설 쓰고 앉아있네> 10화. 책방스탭(2)


내가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동안 자리를 지키는 책방에도, 나의 첫 책 <금요일 퇴사 화요일 몽골>이 진열돼 있다. 책 가까운 곳에 '목/금 일하고 있는 책방 스탭의 책입니다'라고 메모를 붙여두어도,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그 사실을 발견하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우연히 메모를 읽고, 책을 선택하고, 책과 관련해서 말을 거는 사람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처럼 희박하게 느껴진다. 6개월 가량 책방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반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 책과 관련해 물어왔던 사람, 구입했던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 날, ‘그 분’은 이런 희박한 확률을 뚫고 나타난 은인 같은 손님이라 생각했었다. 그는 내 책을 빼들고, 카운터 근처로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지만, 선한 인상을 한 사람 같았다. 나도 경계를 풀고 환대했다. 그는 내게 물어왔다.


“혹시 이 책 쓴 작가님인가요?”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뒤이어 펼쳐질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는, 그가 책을 사지 않더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궁금한 것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 대답했다. (그렇게 하면 안됐었는데. 젠장)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렇.게. 사시면 불안하지 않으세요?”

“네?”


짧은 질문 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렇게' 사는 게 뭘까, 설령 나도 잘 정의 내리지 못하는 나의 삶의 방식을 그가 정확히 알아차린 것이더라도, 불안해야만 하는 것일까. 결론 내리기 전부터 그의 무례함에 기분부터 상해버렸다. 나는 애써 웃어보이며 되물었다.


"이렇게 사는 게 어떤 건데요?"


그는 내 질문엔 대답하지 않고 횡설수설 하고 싶은 말들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저도 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지금 직장이 워-낙 안정적인 직장이고, 연봉이 높기도 하고, 포기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럼 퇴근하고 하고 싶은 걸 하시면 되잖아요?”

“퇴사를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서요.”

“아… 그럼 나중에 퇴사하시고 하시면…”

“퇴사를 하기엔 워-낙 안정적인 직장이어서.”

“아…예…”


나는 그리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가까운 쪽이라면 쫌생이에 가깝다. 마음은 대접이 아닌 간장종지에 담겨 있고, 조금만 방심해도 마음에 담겨 있는 것이 흘러 넘친다. 그는 자랑에 가까운 말들을-그러니까 자신의 앞에 놓인 상대는 '한갓진' 서점 일, 작가 일을 하면서 보내는 동안 자신은 얼마나 성실하게,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안정적인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는 지를-30분 넘도록 늘어 놓았다. 그의 말을 경청할 필욘 없었으므로,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입으로 뱉지 못한 온갖 미운 대답들이었다.


'뭐, 어쩌라고.'


"그러니까, 이렇게 살면 불안하지 않으신지 정말 궁금해서요."

"그런데요. 세상에 그렇게 안정적인 직장이 있기는 할까요?"

"네? 제가 다니는 곳은..."

"설령 직장이 안정적이라 하더라도, 내가 당장 내일 사고가 나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몇 년 뒤에 아파서 직장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불안한 건 마찬가지죠. 제가 불안하다면, 모두가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닐까요."


그의 말에 악의는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의도까지 헤아려주면서까지, 내가 느낀 불쾌함을 무시하고 싶진 않았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안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주 5일 회사원으로 9시 출근, 6시 퇴근을 하면 안정적인 것인지. 그럼 진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건지. 그 기준에 벗어나는 삶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낮잡아보는, 불안한 것이라 치부해버리는 것이 얼마나 얕은 생각인지를. ‘이렇게’ 사는 삶을 ‘불안’하다고 규정해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를. 막말로 내가 재벌집 막내 딸이면 어쩌려고.


그는 30분 동안 자기자랑 비슷한 말만 늘어 놓다가, ‘책 한 권 사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 굳이 빼들고 온 내 책도 사지 않고서. 그가 다음에 책방에 들리게 된다면, 그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많은 말들을 ‘대본집’처럼 정리해 마음 속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책방에서 다시 마주치지 못한 것을 보니 이후로도 오지 않을 것 같다. (소심해서 바로 면전에는 뭐라하지 못하고, 뒤끝 작렬 집에 가서 대본 쓰는 사람 나야나)


놀랍게도 이런 무례는 생각보다 자주 겪는 일이었다. 책방에서 일하기 전, 노들서가에서 일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책 보면서 월급 받고 일하면 얼마나 좋아요?”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사람들 보면, 너무 이상주의자 같더라. 결혼 했어요? 안했죠.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이런 말들을 들으며, 이를 아득아득 갈 때마다(그들은 손님이지만, 나는 직장인이었으므로 참았다) 마음에 삐죽삐죽 가시가 돋았다. 박힌 가시들을 빼내는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생채기도 남는다. 생채기가 아물 때쯤엔,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뱉는 사람들을 반대로 안쓰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그들이 더 불안하다. 때론 더 불행해 보인다. 하지만 굳이 입에 담진 않는다.


프리랜서 혹은 책방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삶을 걱정하고 싶고, 훈수 두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면 적어도 책 10권 이상은 사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안정적이고 여유롭고 불안하지 않은 삶을 산다고 자부한다면, 그 정도는 해야 밸런스가 맞는 거 아닐까.


그런데 이쯤되면 정말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소설 쓰면서 사는 게, '이렇게' 사는 게 불안하지 않느냐고. 불안하고, 막막하다. 이따위 것을 쓰는 데 나중에 먹고 살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같은 삶을 살기 전에도 불안하고 막막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란 것도 안다. 모두가 그렇다. 꼭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튼 간장 종지의 마음으로, 소설 쓰는 인간은 오늘도 이렇게 푸념한다. 에잇, 오늘은 책방 출근 안하는 날이니까 소설이나 더 열심히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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