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암사자 Apr 12. 2023

작업 잘 되는 노래 없나요?

<소설 쓰고 앉아있네> 11화. 노동요

최근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공간은, 무료인데다가 1인실이라는 강력한 장점이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 바로, 방음! 진공 상태처럼 고요하게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오히려 카페 같은 소란한 곳에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기본적으로 조용한 환경에서 느껴지는 옆 사람의 숨결(?)이란 굉장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분명 단단한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 내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낯선이의 고민 섞인 한숨. (힘 내세요. 우린 잘 될 겁니다.) 드디어 글이 잘 풀리는지, 혹은 그 반대인지 분노의 문단 나누기(자매품: 분노의 스페이스바, 분노의 딜리트키… 분노의 키보드 시리즈) 과정이 생생하게 들리기도 하고, 봄철 황사, 미세먼지가 심할 때면 어김없이 뿌우-뿌우 하는 ‘비염 코끼리 사육하는 소리’ (a.k.a. 코 푸는 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사실 방음 문제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옆 방 사람이 만드는 소음 때문에 글 쓰는 일이 방해된다는 것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다. 내가 만드는 아주 미세한 소리도 옆 방에 전달된다는 의미니까. 모든 행동을 조심조심, 혼자 쓰는 방인데도 뭔가 훔치러 온 사람처럼 살금살금 행동하게 된다. 때론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과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살짝 어깨도 결리는 것 같다. 


옆 방의 이름모를 누군가의 행동 패턴을 거의 외우기 직전, 결국 블루투스 헤드폰 하나를 마련했다. 작업실에 가 있는 동안엔 귀에 땀이 나도록 계속 착용하고 있는데, 그 덕에 옆 방에서 만드는 미세한 소리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 전해질 소리에 신경쓰는 것도 둔감해졌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법은 이런 때도 적용이 되는 것일까.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게되면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지만 ‘선곡’이 문제가 될 줄이야. 나름 줏대가 있는 성격이라 생각했지만, 듣고 있는 음악에 따라 팔랑귀가 되어 글이 휘청휘청한다. 


오래도록 쓰고 있는 장편 소설이 있다. 요즘 유행한다는 힙합 음악을 듣다보면,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느와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하고, 봄이 왔다고 알앤비나 살랑거리는 봄 노래를 잠깐 들으면 갑자기 로맨스를 꽃피운다거나 하는. 


어떤 풍파에도 굴하지 않는, 단단한 소설 쓰는 사람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다. 하루 아침에 성장할 수는 없으니, 나는 음악의 대안을 찾기로 한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바로 ‘8시간 심해 고래 소리’. 꼬록꼬록- 물 속에서 들리는 소리와 간간이 ‘우웅-‘하고 우는 고래 소리가 반복해서 들리는데 주변 소음 차단도 되고, 다른 세계로 풍덩 던져진 기분이어서 글 쓰는 데 집중하기 좋은 것 같다. 아직까지는.


고래의 울음 소리도 분명 의미가 있을텐데, 나는 오늘도 무슨 말인진 모르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쓴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의 고막 가장 가까운 곳에 흘러나오고 있는 노동요는 무엇일까. 혹은 쉴 때 무슨 노래를 듣고 있을까. 거대 음악 기업의 알고리즘 추천 말고, 오랜만에 사람들의 음악 추천을 받고 싶은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렇게 사는 게 어떤 건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