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소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by 암시랑

몇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긴장감과 요동치는 감정을 따라가기 벅차다. 의학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내가 마치 톰이 된듯하게. 설명과 말이 단락 구분 없이 이어져서 그런 건지 담담하고 또박또박 한 문체가 생경한 감정을 주고 있다.


카린은 절박하게 살고 싶지 않았을까? 아직 리비아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체취도 맡아 보지 못했는데. 한데 카린의 죽음조차 너무 건조하고 담담하게 숫자 몇 개로 설명한다. 그래서 슬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당황하게 한다. 갱년기를 겪고 있는 나조차 눈물이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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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살아있을 때만 가능한 일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일이란 살아 있는 동안 사무칠 그리움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톰이 카린에게 해왔고 리비아에게 할 것들은 어쩌면 나는 감히 흉내 내기도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죽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그것도 자신과 닮은 딸을 출산하자마자. 남자의 슬픔을 가늠할 수 없다. 그 거대하고 깊은 상실과 공허를.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그 불안함을. 거기다 아버지까지.


"이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항상 내가 텅 비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가벼워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p176


딱 내 기분이 그랬다. 읽으면서 텅 비어지는 느낌. 그렇지만 기분은, 감정은 가벼워지지 않고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 든다. 원칙과 융통성이라는 단어가 어떻게든 맞물려 돌아가려다 불쾌한 소리만 내고 있는 상황 같다. 답답한 공무원 놈들 같으니라고. 10년을 부부로 살았던 사랑 따위는 개의치 않고 그저 법적 증명만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도대체 어찌할 방도가 없는 톰으로선 리비아의 아버지임을 부정당하거나 카린의 지나가는 남자 정도의 취급을 당하는 것에 나까지 덩달아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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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린스카 병원이 그립다고 말하면, 너는 나를 이해할까?" p371


차분하게 읊조리는 듯한 톰의 이야기는 있는 대로 감정을 내리누르고 있는 그를 느끼게 한다. 슬픔과 공허, 상실로 뒤범벅된 그가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 역시 그렇다. 그의 감정이 내 감정마저 건조해져 말라붙게 만든다. 그의 카린에 대한 그리움은 먹먹하되 슬퍼하지 않아야 할 것 같은 그래서 너무 더 처연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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