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무신경함에 멘탈은 흔들리고

by 암시랑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는 말이 아이들 입장이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 하는 질타 섞인 말이라고들 한다. 김현진 작가도 그의 책 <우리는 예쁨 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에서 그랬다. '의심해 봐야 하고 평소 가식적인 인간들이 저런 말에 능숙하다'라고.


물론 아이의 긴 인생이 어떻게 될 줄 알고 정해진 답지처럼 '잘되라고' 콕 집어 뭐라 하겠나. 부모 욕심과 기준에 맞춰 보겠다고 아이들을 닦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작가 모친도 그랬다니... '나는 지들 잘 키워 보겠다고 새벽부터 죽도록 일하는데 깨우지 않으면 일어날 의지도 없고 하루 종일 게임에 핸드폰만 해대는 놈에게 베알이 꼴려서' 이런 걸까?


그러면 아이들의 인생에서 한 걸음 떨어지기 위한, 성인이 되었을 때 좀 더 사려 깊고 자신의 인생에 책임지려 애쓰는 법을 알게 해 주기 위한 소리라면 말이다.



August de Richelieu_Pexels.jpg Photo by August de Richelieu, Pexels


양육에 최선을 다하는 부모의 고단함을 존중하거나 마음을 헤아리는 사려 깊음이 날 때부터 몸에 베인 아이들이 아니라면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종종 "너도 그맘때 그랬잖아"라며 너도 그랬는데 왜 아이들한테는 그러냐는 식의 비난에 심기가 불편하다.


최소한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해서, 부모의 마음을 사려 깊게 알아 드리지 못했고 인생에 노력해야 할 때 애쓰지 않아서 좀 더 고단하게 살았다. 그래서 그런 경험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싫어서 아이들에게 모진 잔소리를 하게 된다. 이런 감정을 굳이 대물림할 필요가 있을까?


종일 에어컨을 틀어도 쉽게 더위가 가시지 않는 오후. TV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던 아들 녀석이 고성을 지르는 통에 화들짝 놀라 깼다. 아내가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자 '알았다'라고 대답한 녀석은 5분도 안 돼서 다시 고성을 질렀다. 깜짝 놀라 잠이 완전히 달아난 자리에 짜증이 밀려들었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있는 것도 울화통이 치미는데 엄마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버리는 녀석의 태도가 더 괘씸했다.


그렇게 기분이 상한 채로 딸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아무렇게나 주정차된 차들 때문에 꽉 막힌 도로에 짜증이 더 치솟았다. 그렇게 내가 내뿜는 짜증으로 아내와 딸아이가 어쩔 줄 몰라했다. 딸아이는 자신 때문에 엄마 아빠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울컥하고 속상함에 이런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더 속상하다.


아내가 그랬다. 갱년기라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들 녀석의 무신경함이 참 많이 힘든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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