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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소설] 죽음의 로그인

| 어디에나 있는 'N'번방

by 암시랑


작가 우샤오러, 타이완 법대 졸업 후 가정 교사의 경험을 녹여낸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를 썼고, 이 책은 2018년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됐다. <상류 아이>, <우리에게 비밀은 없다>와 타이완 양대 문학상 금전장 최종 후보에 올랐던 <도착하지 못한 소녀들>을 썼다.


책의 시놉시스가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온라인이란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그것도 게임으로 만난 어린 여자 친구들이 사라지는 의문의 사건을 파헤친다는 소재가 흥미로웠다.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 천신한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상한 '시그널'의 발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온라인 게임 뒤로 숨어든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게임에 빠져들게 단초를 제공하고 신기루처럼 사라진 '성냥'의 게임 찬양(?)론을 마주한다.


그런 이유일까?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에 빠져 사는 아들의 존재를 생각한다. 아들도 성냥의 말대로 대뇌 피질을 자극해 완벽해지려는 걸까? 정작 현실에서는 게임을 하면서 갖은 짜증과 욕설과 고함을 쳐지르는 일의 반복인데? 성냥의 말대로라면 똑똑해져야 하는 거 아님? 원시 시대 인류처럼 몸을 웅크리고 동굴 속에서 생활하던 성냥이 아들 같아서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KakaoTalk_20250406_163927052_01.jpg 64쪽


천신한과 허칭옌은 시리와의 만남 후에 검은 연기의 정체가 죽음의 시그널이고 퀘스트를 깨는 게임처럼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KakaoTalk_20250406_163927052_02.jpg 195쪽


믿고 의지했던 천신한의 정체가 드러나고 갑자기 시리가 없어졌다. 이후 이야기는 등장인물을 추리와 추적하면서 점점 빠져들게 된다. 어쩌면 천신한이 경계하는 황은 성냥이 아닐까? 허칭옌은?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깊게 빠져들게 된다.


"세상에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를 진짜로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
270쪽


과연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를 더 이상 믿지 못해서 온라인에서 만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진실한 관계를 떠올려야 하는 세상이 된 건가,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얼굴도 모르는 게임 속 사람들에게 아저씨, 형, 누나라며 아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아들을 보면 그런 세상인가 싶기도 하고. 친누나를 그렇게 살갑게 부른 적이 있던가?


좀 극적인 연출을 원했던 건지 아니면 대만의 교육 풍도를 지적하고 싶던 건지 모르겠지만 자식의 학벌과 성공이 집안의 자랑이 되는 분위기는 좀 도를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도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랄까? 헬리콥터 맘의 교육열이나 명문대에 집착하는 상황은 비슷하지만 가문의 영광을 쫓는 건 뭔가 좀 다르달까? 아닌가? 같을지도 모르고.


KakaoTalk_20250406_163927052_03.jpg 370쪽


엉덩이를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될 만큼 빠르게 게임 중독자들의 이야기일 것이라 예상했던 거와는 다르게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N번방이나 박사방 등 같은 비공개 계정의 성 착취 물에 빠진 인간들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내용이어서 놀랐다.


특히 작가의 말을 통해 학교나 회사 심지어 가정에서조차 인정 욕구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이 권력에 얼마나 심약한가를 보여주는 데 뒷골이 서늘해질 정도다. 그래서 이런 방장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디지털 성 착취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은 포르노 콘텐츠를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는데도 왜 여전히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법대를 나온 나는 즉각적으로 법학 수업에서 배운 것을 떠올렸다. 성폭력의 표층은 ‘성(性)’이지만 핵심은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권력’ 그 자체라는 것이다. 포르노 콘텐츠는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뿐 권력은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477쪽, 작가의 말


한데 작가는 성냥, 궈리눙, 쥐망, 펜리르, 다아시의 정체를 밝히지도 잡지도 않은 채 끝을 냈을까? 가상 세계에서 얼굴을 가린 채 어슬렁거리는 모두가 그들이라서? 딱히 특정할 필요 없이 정체를 숨기고 현실에서 도피해 가상 공간으로 숨어든 누구나 학교의 '교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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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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