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이 책은 시카고 예술학교 등 여러 대학교에서 창작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에세이와 소설을 발표해 온 주목 받는 작가가 어린 시절과 정신 병동에 3년간 입원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회고록이자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고백한다.
"정신 병동은 정신질환을 치료도 하지만 생산하기도 하는 시스템"이라는 성찰과 동시에 독서와 글쓰기는 병원 밖 삶으로 회귀하는 여정일 수 있다고 말이 인상적이다. <뉴욕 타임즈>, <뉴요커> 등 주요 매체의 호평 속에 동시대 중요한 여성 문학으로 자리매김한 책이라고 한다. 그럴만하다.
특히 이 책은 자신의 정신 병동 장기 입원과 그로 인한 낙인의 기억을 문학 작품 읽기 경험에 깊이 겹쳐내며 써 내려간, 회고록과 문학비평을 아우르는 눈부신 에세이로 평가받는다.
공교롭게 정신질환과 관련된 책을 연이어 읽게 됐고,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 연재의 에피소드도 정신 질환 이야기라서 왠지 요즘 내 정신 상태가 이와 비슷하게 멜랑꼴리해서 가 아닐까 의심한다.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엄마의 삶을 대신 살아온 듯한 오리나가 '자신에게도 아침이 오겠냐'라고 묻자 효신(이정은 분)은 '어떻게 내내 밤만 있겠냐'라며 맞을 준비가 되었다면 아침은 꼭 온다고 했다. 문득 이 장면을 더듬게 된다. 그때 나는 효신의 말을 들으며 그랬다, 그럼 그곳에선 아침은 누구에게나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구나, 밤만 있는 사람도 있겠구나 했었는데 저자의 글에서 확인하는 기분이다.
"사람은 외로움으로, 아무와도 얘기하지 않고 여러 날, 여러 주를 보내는 것으로도 이상해해질 수 있다." 19쪽
주목할 것이 아무와도 여러 날, 여러 주를 얘기하거나 만나거나 하지 않아서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외로워서 그렇게 된다고 한다. 근데 그게 정말 그래서 사람은 어차피 외롭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이미 기억도 희미해진 이십 년 전에 작가가 겪고 느꼈던 일들의 회고록이라지만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빠져들었다. 느낌 상 1인칭 소설 같았달까? 단지 내 귀에는 뛰어내리든 뛰어들든 뭐든 결정을 내리라고 '지금'이라는 재촉해대는 말이 들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위안 삼으면서 읽게 된다.
또, 정신병원이라는 제도적 공간에 스며들어 자신이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치료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의미들'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읽기와 쓰기가 어떻게 돌봄이 되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런 작가의 경험이 철학이 되는 순간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그게 병원에 들어 '갔던지' 혹은 '있던지' 아니면 나와서 다시 들어가야 하는지 같은, 정신병원이 중심이라는 게 문학적이 될까? 버지니아 울프처럼? 아무튼 정신 병동에서의 삶이 그에게는 생존의 연장 선상이라기 보다 머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시 병동에는 매일 아무 맛도 첨가 안 된 뻥튀기 한 봉지만 먹고 다른 건 아무것도 먹지 않던 여자 간호사가 한 명 있었지만, 그는 간호사였기 때문에 미친 게 아니었다. 내 의료 차트에 나의 식습관을 '기괴하다'라고 적었던 사람이 이 간호사다." 43쪽
과연 우리는 미쳤다는 걸 알기나 하나? '미친 여자'로 낙인찍는 사회 관습이 아닌 그의 말대로 나는 병원에 '살았던' 것이 아니라 '머물렀던' 것이라면 그게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문득 궁금했다.
한참을 더 읽다가 맞닥뜨린 히스테리라는 단어에 큭 했다. 앞에서 읽었던 '돌아다니는 자궁'이라는 의미가 달려왔다. 히스테리가 여성만 걸리는 정신병이었다는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버렸다.
"나는 X를 느껴요. 혹은 Y를 느껴요,라고 말하는 일에 진저리가 났다." 302쪽
작가가 '미쳤다'는 프레임에 갇혀 매 순간 자신의 감정을 검열하고 밝히면서 이 말도 안 되는 사회 제도적 관점에서 '고통스러운 내면'의 탐색을 통해 문학으로 펼쳐낸 점이 존경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터운 작가의 경험이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깊은 위로와 공감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와 전문적이거나 철학적인 문체는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관심에 따라서는 좀 딱딱하게 느껴져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정신적 고통과 치유에 관심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푹 빠질만한,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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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