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아픈 상태에서 일상이 무너지고 나니까 그동안 힘들다고 했던 삶은 그렇게 힘든 게 아니더라. 과거의 나는 어떤 순간에서도 웃으며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기쁜 상황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조차도 말이다." p333, 죽는다는 것
오십, 재수 없게 추석 연휴 내내 끙끙 앓다가 처갓집도 못 가고 응급실 신세를 지고 나서야 머리를 들 만큼 되니 그간 궁금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스물아홉, 그 재수 없다는 아홉수다. 게다가 초라하기까지 하다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녀가 뻘짓으로 이십 대를 허송세월 했음을 후회 가득한 심정이 활자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넋두리다. 한데 그럼에도 그대는 열심히, 잘 살았다고 위로를 전하고 싶다. 우린 어쨌거나 살기 힘든 시대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잘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 조금 더 잘 살면 그만이다.
스펙이나 학벌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쿨하게 때려치우고 아르바이트로 적당히 벌고 적당히 즐기는 인생을 추구하던 그녀가 학벌, 직업적 차이 같은 사회적 시스템을 몸소 뼈 때리게 느낀 바를 솔직 담백하게 하고 고백하는 걸 읽다 보니 꼰대 입장에서 자식들에 해주는 충고 같아 슬며시 웃음도 난다. '내가 살아보니 현실은 만만치 않아, 공부하랄 때 열심히 해'라며 말이다.
"생각해 보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보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게 훨씬 많았다." p77
맞다! 인생 계획대로 절대 되지 않는다. 나도 벼락같이 목이 부러져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누가 정화수 떠놓고 불철주야 빌지 않았다면 모를까). 나 역시 병원과 재활로 금쪽같은 이십대를 바람 스치듯 날려 보낸터라 남 이야기같지만 않다.
읽다 보면 현재 스물아홉 백수인 자신의 무능을 탓하는 하소연으로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건전하고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참 괜찮은 청춘이었다는 생각과 그녀가 이루고자 했던 버킷리스트가 모야모야병으로 황망히 물거품이 된 현실에 얼마나 상실감이 컸을까 안타깝기도 하다.
무엇이 건전하고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기준이 뭐냐고 눈알을 부라리며 덤비는 청춘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살짝 들지만 그 기준은 나이 오십 먹은 꼰대인 내 기준에서 보면 그렇다.
이 책은 이상에 뒤통수 맞고 현실을 고스란히 체감한 20대를 관통하는 경험담을 담은 책이다. 미친 듯이 대학을 위해 달리다 갑자기 맞이하는 성인이라는 자유와 책임감은 다소 혼란스럽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보다 '잘'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조언이자 꿈은 꿈이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건 현실이라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뼈때리는 충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간절히 바라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에 반감을 품을 게 아니라, 지금 그 꿈을 이룰 수 있는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노력할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는게 먼저였다." p86
꿈, 직업, 관계, 결혼 등 20대가 관심을 가질만한 다양한 주제에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독자에게 조언하듯 전하고 있는데 꽤나 현실적이고 공감하기 쉽다. 작가의 금 같은 이십 대가 후회들로 점철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반면 줄곧 같은 내용의 후회와 충고를 듣다 보니 지치기도 하지만 막연한 이상에 흔들리기만 할지 모르는 청춘들에게 보다 '잘'사는 인생에 대한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에세이보다 자기계발에 가깝다고 느끼는 이유는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모야모야병으로 안 그래도 팍팍한 인생이 더 힘들어졌다고, 니들이 나보다 더 힘드냐고 징징거리는 넋두리로 채우지 않고 긍정적이지만 보다 현실적인 조언이 담뿍 담겨서다.
응원한다. 어디에선가 점점 더 풍성해질 인생이 기대되는 그녀도, 이제 막 성인이 된 청춘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