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이 책은 말하자면, "존재에 대한 의미와 상실을 준비하는 기록이자 관찰 보고서다."
역동적! 역동적이라니. 죽음을 표현하는 말치고는 생경하지만 파격적이다. 죽음을 떠올리자면 어둡고 습하고 침울 그리고 정지다. 그런데 시작부터 역동적이라는 저자의 표현에 머리가 띵할 지경이다.
2인칭, 죽어가는 내 옆에서 죽어가는 나, 죽은 나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대화하듯 차근차근한 말투로 전한다. 그리고 죽어가는 나는 침묵하고 그의 말을 경청하는 듯하다. 참 기분 묘해지는 책이다.
"죽음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자각하는 순간, 그 자각이 삶을 지배하는 순간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p17
죽음이 사망진단서 같은 종이 쪼가리로 치부되지 않으려면 죽은 후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가에 대해, '화장?', '매장?', '특별한 소원?' 같은 것들을 미리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참견하는 저자의 오지랖이 고맙기까지 한 걸보면 죽음을 둘러싼 변화에 대해 난 공감하는 지점이 많은 걸까?
그런 일들이 매끄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준비하거나 글로 알려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죽은 후에 이별이 어때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남 얘기처럼 담담하게 듣게 되지만 팔순 부모가 계신 나로서는 곧 닥칠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선이란, 신기루처럼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면 날카롭게 경계가 있는 것 같아도 가까이에서 보면 매우 애매해지고 말지요." p84
단편적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죽어'감'과 그 후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하는 방식 역시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여러 정황이나 상태의 변화를 기록한다. 그래서 꽤나 두려운 일일 테지만 아주 건조하게 또박 또박 읽어 나갈 수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죽음이 그저 생물학적 기능의 정지 정도로 읽혀 버린다.
"탄생처럼 죽음의 순간에도 우연히 선택 된 사람들과 함께 갑니다." p93
1초마다 2 명이, 1분마다 100명, 1시간에 6,500명 그리고 하루에 15만 명이 죽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러는 한편, 1초에 죽는 그 두 명이 갠지스 강가의 농부의 아내와 안데스산맥의 열쇠공이라는 비유에 감탄해 버린다. 너무 로맨틱해서 순간 미안해지기도 한다.
아, 내가 죽는 그 순간에는 이 지구상 어느 여인이 죽을까 궁금해졌다. 분명 여성이었으면 싶다. 그것도…, 여기까지만 말해야겠다.
자연사든 그렇지 않든 죽은 망자의 시신을 염하는 과정을 아주 촘촘하게 기술하고 그 과정에서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까지 예측하는 내용이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준다. 게다가 장례업자 선택하는 노하우까지 전수하다니. 저자의 세심함이 웃프다.
읽다 보니 우린 '죽겠다'거나 '죽을 뻔했다'거나 '죽고 싶다'라는 둥 죽음을 너무 쉽게 입에 올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오늘도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에고, 힘들어 죽겠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그런 내 말을 아내는 무신경하게 흘렸다. 우린 이렇게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걸까.
찰리 브라운은 '사람은 언제고 죽는다'라고 스누피에게 말하고 스누피는 대답한다. '그날을 제외한 모든 날엔 살아있다'라고. 설마 우린 '살아 있다'라는 안도감을 위해 죽겠다는 소릴 하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너무 철학적이 되는 듯해서 손발이 오그라든다. 역시 죽음은 철학적이다.
어쨌거나 죽음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과 시신의 변화를 너무 상세하다 싶을 정도로 죽음의 과정부터 죽음을 확인받고 그에 따른 관련 공적 업무 처리에 장례와 관련한 일체의 일들을 담담하게 죽은 자에게 시시콜콜하게 보고한다. 어쩌면 '왜 죽어서 이렇게 복잡하고 피곤한 일들을 만드냐'라고 푸념을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당신의 졸업들 중 가장 슬픈 졸업, 마지막 성적표입니다. 바로 사망 증명서." p180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키가 부쩍 컸으니 아마 지금까지 평균 70kg 정도를 유지하며 살던 내 몸이 '죽는다'라는 행위의 마감에 무게감이라고는 느낄 수도 없는 A4 용지 한 장으로 삶의 무게를 가늠하게 되는 일이 참 어이없기도 하면서 서글프기도 한, 딱히 정리되지 않는 감정이 든다.
"그들은 당신을 잃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 눈길, 당신의 손의 촉감, 당신의 머리카락 냄새를, 당신 몸의 따뜻함, 힘, 능력, 지식, 경험을 잃었습니다. 당신의 기분, 당신의 제스처, 사랑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당신 안의 그렇게나 많은 것들을 잃었고 그 뒤에도 끊임없이 많은 것들은 잃었습니다. 죽음 뒤의 상실은 당신만을 포함하는 게 아니라, 당신을 나타내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p206
곧 내게도 일어날 일이기에, 팔순을 넘긴 아버지와 바라보고 계신 어머니가 계시기에 이 단락에 있는 활자는 유독 한자 한자 꾹꾹 눌려 가슴에 새겨진다. 정말 그때가 되면, 어쩌죠? 살아남은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책이 유독 공감이 많이 되는 이유는 감수성 넘치는 에세이스트가 아니라 건조하고 무심한 저널리스가 적어 내려간 죽어감에서 죽음, 아니 그 후까지의 과정이 오히려 너무 생생해서 현실감을 잃을 지경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죽는다는 것에 대한 관념이 새로워졌다.
오타.
p229 넷째 줄. 카톨릭교도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