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소설] 오리 이름 정하기

by 암시랑

홀로그램이 독특하고 난해한 그림의 표지. 거꾸로 배를 부풀린 오리를 사이에 두고 절벽에 선 천사와 악마. 대립적 상징이 좀 거시기 하지만 두고 보기로 한다.


물론 이름이라는 것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 지어 주는 것이지만 유독 제목에서는 정해져 버리는 오리의 수동적 자세가 느껴진다. 사실 스스로 정하는 건 닉네임이지 이름은 아니라서 더 흥미롭다.


책 띠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매료당한다기보다 기묘하고 놀라서 어쩔 줄 모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별의별 감정과 기분이 들었다. 책은 총 3부 12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느 하나를 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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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아한 좀비를 지나 오리인지 댐인지 모를 오컬트 같은 이야기들이 꼬리를 문다. 펼쳐지는 단편들은 이 시대 한참 물오른 이야기면서, 분명해야 할 이야기들이지만 적절한 표현이 남사스러울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도 담겼다. 그저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는 것으로 치부하긴 좀 노골적인 표현이 오히려 혐오에 대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다가 <한국 사람의 한국 이야기>에서 말하기 싫어서 영화를 하는 나는 말하고 싶어서 영화를 하는 양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정체성은 양의 후진 아이라이너와 함께 흘러내린 건 아닐까. 나는 살아 있을까.


"숙제가 풀렸어? 옛날 걸 끌고 오면 그림자잖아. 그게 가짜라는 거야. 그러니까 옛날 형체를 없애고 현재가 와야지. 알아들었어, 못 알아들었어?" p200


근데 삼청동 언덕길 위에 계시는 선생님에게서 왜 빵상 아줌마 냄새가 날까?


작가를 이해하기엔, 세계관이라 하기엔 뭔가 어색한 작가관이랄까? 시종일관 이런 오컬트적 이야기를 쏟아내는 작가의 정신세계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나마 <작가의 말>에서 고백하듯 적어 내려간 그녀의 글에서 아주 조금의 우울과 무기력을 이해하게 되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좀 차원이 다른 세계를 구경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누가 그러던데…. 정신이 멀리 갔다가 돌아오면 괜찮지만 돌아오지 않으면 또라이라고. 근데 다행히 돌아온 느낌은 있다. 여전히 어지럽긴 해도. 뭔갈 맛있게 먹었지만 미처 맛을 느낄새도 없이 사라져 기분 더러워진 느낌? 딱 그거다. 참, 오컬트적 그림은 분명 내 취향은 아니다. 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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