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하고 동경하는 대상에게서 조금씩 부적 감정을 느끼다, 아예 질려버린 경우가 있는가?
Y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갑작스러웠다, 꽤.
그녀와 알고 지낸지는 수년이 지났었지만 우리는 서로 결코 가까워지지 않았었다. 그녀는 남과 수다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나 또한 그랬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결코 섞이지 않았다. 우리는 수년간 데면데면했다.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어느 음악 페스티벌에 같이 가자고 하였다. 아니 그게 나였나? 아니 그녀였다.
어쨌건 그녀와 하루 종일 동행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왔다. 내 신발은 진흙창에 뒹굴어 이미 못쓰게 되어버렸고, 엄청나게 큰 우비를 걸치고 다녔다.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잔디밭에서 맥주를 마셨고, 비를 맞으며 노래를 들었다. 헤드폰을 쓰고 춤도 추고, 감미로운 노래를 듣다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기도 했다. 꽤 좋은 하루였다.
하지만 꽤 좋은 하루를 같이 보냈단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 이전부터 나는 Y의 어떠한 모습들을 동경하고 있었다.
논문을 책 읽듯 탐독하며, 어떠한 가치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자신의 생각도 꽤 유창하게 풀어내는 그녀. 그녀가 가진 어떤 확고한 매력에 이끌렸다. 처음엔, 그녀의 확신에 찬 듯한 말투에 내 생각을 말하기 조심스러울 정도였으니까. 그녀가 수없이 내 입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취향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녀의 생각들이 너무 흥미로웠다. '어떻게 저런 생각들을 하지?'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또한 나에게 수없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 어느 정도냐면, 그녀의 말 한마디에 벅차오를 정도였으니까.
'이번에 이사한 기념으로 내가 선물 하나 줄게. 같이 남대문 그릇 시장 가볼래? 거기에 네가 좋아할 것들이 많아.'
이 단순한 문장들엔 어떠한 미사여구도 없다. 하지만 난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단순한 문장들에 매료되었다. 그녀의 말들은 내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았고,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어느 문장 하나 과하지 않고 담백했다.
내가 두 번째 직업을 가지게 된 것도 그녀의 영향이 컸다.
그녀는 예술을 항상 가까이하고 있었으며, 주변에 그것들을 무심히 전파했다. 그녀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일상처럼 보였다. 그녀의 삶 자체가 예술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와 같이 지내다 보니, 나 또한 그런 삶에 녹아드는 것이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두 번째 직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녀는 내 작업물에 꽤나 많이 출연해 주었다. 그녀는 내 작업물들을 보며 같이 행복해했고,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었다. 그녀가 있기에 불투명한 미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를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물어보면 바로 그녀를 언급했다. 그리고 수년이 흘렀고, 나는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녀는 내게 너무 힘든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