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ugae일공오 Apr 20. 2022

좋아하는

보라색이 좋다.


정확히는 불빛 하나 없는 밤, 마치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보랏빛 공기의 흐름이 좋다.

 흐름 안에서 나는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중력이 없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보라색 가스들이  주위를 감싸면  눈을 감고 은하수 같은  가스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안을 보랏빛으로 가득 채우고 싶지만 아무리 들이마셔도 이내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어디서든 보랏빛의 기운을 발견하면 나는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순간의 모든 것을 전신으로 느끼려고 한다. 석고로 만든 조각에 향이 가득한 오일을 뿌려 흡수시킨  계속 간직하듯이  기운을 모두 흡수하려 한다. 그리고  향은 내게 계속 남아  어디선가 보라색이 되겠지.


몽롱한  일렁거리는 마음을 가진 채로 흔들리고 있는 눈동자를 보는 것이 좋다.

나도 일렁일렁. 눈동자도 일렁일렁. 그런 눈동자는 사람을 같이 일렁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안으로 침전하며 조용히 일렁일렁.


웅웅거리며 조용히 시를 읊는  같은 노래들이 주는 고무감이 좋다.

직관적으로, 이성에게 첫눈에 반하듯 왠지 모르게 끌리는 노래들이 있다. 처음엔 몇몇 단어와 노래 자체가 발산하는 색에 이끌려 조용히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한다. 그다음엔 다시 단어를 연결시키는 구절들을 곱씹으며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본다. 그렇게 그리다 보면 마치 내 그림인 것 같은 노래들이 있다. 그런 노래들은 나를 어딘가 꽉 채우는 것 같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고양감에 휩싸여 있다 보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끝없이 팽창하는 기분이 들어 어지럽기까지 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르기도 한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 숨만 쉬어도 내가 나아가고 있다는 만족감이 든다.

좋아하는 것들을 한껏 즐기고 나면 갑자기 공허에 내던져지곤 한다. 공허는 텅 빈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공허 안에는 수많은 미세한 먼지들이 흔들거리고 있으며 그 먼지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느릿느릿 대류한다. 그 흐름을 가만히 느끼고 있으면 나는 검은색이었다가 보라색이었다 마지막엔 투명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너무 공허해요, 땡벌 - 1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