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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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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ugae일공오 Jun 03. 2021

기억 1

그날은 그와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다시 마주치기 전까진.

그는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과 성격상의 차이를 들먹이며 우리는 맞지 않는다고 거듭 말했다. 나는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런 이론적인 이유들의 열거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나는 그를 보러 갔고, 그는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쪽은 상대방에게 단 한순간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그의 집 근처 카페에 앉아있었다. 그가 어느 동네에 사는지 정도만 알았기 때문에 나는 아무 카페에 들어갔다. 가장 큰 벤티 사이즈 커피를 시켰다. 나는 다시 생각을 해야만 했다. 그는 날 보기 싫다고 했다. 죄송하다는 말만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앉아서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밖엔. 정말 우리는 인연이 아닌 걸까. 나만의 일방적인 생각이었나. 같이 웃고, 떠들고, 같은 것들을 보며 좋아했던 순간들은 그냥 그런 것들이었나. 사귀지도 않았는데. 마치 오래 사귄 연인에게 차인 여자마냥, 상대방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음에 아쉬워하며  그곳에 그를 두고 떠나야 했다. 내 손보다 큰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원샷하고 카페 문을 나섰다.


오른쪽, 왼쪽, 직진, 뒤로 돌아가기.

나에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4가지나 있었다. 나는 굳이 신호등을 건너 앞으로 걷고 싶었다.

그냥 돌아가는 길 자체가 싫었다.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무작정 앞으로 걸어갔다.


5분쯤 걸었을까.

멀리서 그와 닮은 실루엣이 보였다. 믿기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지 당연히.

1m 남짓 남았을 때, 그가 맞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그의 팔을 잡았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고 나 또한 그랬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도 나와 인연이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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