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 찾은 아름다운 것

홀로 보내는 생일

by 아무개


헝가리 시간으로 생일을 맞이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생일축하연락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이곳에서 혼자 생일을 맞이하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무서웠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 안 좋은 일이 나타나면 엄청 크게 다가올 것만 같아 되레 아침부터 겁을 먹었다.

그래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될 거라는 용기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숙소에서 세체니온천까지 약 5키로 정도 걸려 아침 러닝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구름이 많이 껴 비가 올까 걱정됐지만 다행히 도착할 때까지 비가 오진 않았다.

하지만 야외 온천에 나오니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에겐 계획이 있었다. 러닝으로 목적지에 도착 후 그늘아래 썬배드에 비치타월로 자리를 맡아둔 후 온천을 즐기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이하며 약간의 스낵바,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썬배드에 누워 여행자와 달빛이라는 헝가리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유라는 낭만을 즐기고 싶었다.

세체니 온천

비가 오면서 나의 계획은 처참히 무너져갔다.

온천 밖은 너무 추웠다. 썬배드고 뭐고 낭만이고 뭐고 내 생존을 위해 나는 온천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방수팩 안의 핸드폰으로 경치를 찍으려 했지만 구름 낀 하늘은 일부러 못생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약올렸다.

하는 수없이 방수팩은 나에게 작은 우산이 되어줬다.

옆에서 온천을 즐기던 할머니는 나의 작은 우산을 보고 so funny 하다고 했다.

나는 오늘 비가 와서 아쉽다고 말하며 나의 작은 우산을 자랑했다. 짧은 내 영어실력으로도 할머니는 너무나 좋아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비가 와도 온천을 즐길 수 있다며 좋아하셨고 그런 할머니의 마인드를 닮고 싶었다.

그 후 나도 작은 우산을 옆에 두고 야외에서 온천을 즐겼다. 언제 또 내가 비를 맞으며 온천을 즐겨보겠는가!

thank you grandma!

-세체니 온천 안에서

예전에 한국에서 연 뱅크시 전시회를 못 봐서 아쉬웠다.

공항 입국날 수하물을 찾는 도중 뱅크시 전시회 포스터를 보고 꼭 봐야겠다 생각했다.

뱅크시에 작품을 보니 사회에 대한 비판을 예술로 표현하고 창의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주었다.

그의 작품을 보다 보니 혼자 웃음이 나오는 것도 있고 반성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나는 전시회를 가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의 머물며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사진으로 남겨놓지만

뱅크시의 작품을 보니 나에게 미술 작품은 무슨 의미일까 그냥 나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 보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남긴 채 반성하며 전시를 마무리했다.

-뱅크시 전시회 안에서

생일을 맞아 야경크루즈를 예약했다. 비가 와서 걱정이 됐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부다페스트 야경은 비가 오니 더 빛을 바랐다. 몸은 추웠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말이 떠올랐다. 고통보단 아름다움이 더 오래간다고. 나는 아름다움으로 고통을 이겨낸 것이다.

야경을 배경 삼아 칵테일 한 잔을 즐겼다. 이런 좋은 풍경들을 보다 보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도 좋아했겠지.


내 나이 27살 우리 엄마는 27살에 나를 낳으셨다. 지금, 딱 오늘 엄마는 나를 낳았던 것이다.

27살의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한 생명에게 받쳤다. 그녀는 어떤 생각들이 들었을까.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에 한 어린 생명을 마주했을 때.

그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그녀도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버텨냈을까.

그 생명이 벌써 자신의 나이와 똑같아졌을 때를 상상했을까.

내가 너무 사랑하는 우리 엄마는 항상 나만을 바라봐주고 자신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 준다. 그래서 항상 미안하다.

원하는 삶을 살아줄 수 없어서. 내가 원하는 삶이 엄마가 원하는 삶과 달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해 주고 사랑해 줘서. 오늘따라 엄마가 많이 보고 싶다.

27살에 그녀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어리고 아름다울 나이에 그 아름다움을 잠시 내려놓아줘서 고맙다고.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줘서.

나에게 모든 것을 양보해줘서.

사랑의 의미가 어떤건지 알 수 있을 만큼 사랑해줘서.

당신의 아들일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거라고.

-생일 4분 남기고서

keyword
이전 06화부다페스트에서 찾은 아름다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