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4⌟ 모두 아름 다 왔다
-밀물|1979년 3월호|중동에 나가있는 아우들에게|이경희|수필가-
▬광주에서 온 연수생
L그룹 입사 해인 1989년 5월 경이다. 그룹 연수가 끝나고 사내 연수 기간이었다. 사내 연수는 주로 직능 관련된 교육이다. 문서작성 및 관리, 전산 그리고 회사 주력 제품 교육등이다. 전체 신입사원 200명 중 1차 소집된 교육생은 약 50명 정도였다. 교육생들은 본사 그리고 오산, 청주, 창원 등의 공장과 각 지방 영업 사무소에서 참여한 입사 동기들이다.
청주 2 공장 한편에 자리한 사내 연수원은 교육동과 생활관으로 나뉘어 있다. 연수 과정은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5시에 끝난다. 가끔 교육을 마친 뒤 담을 넘어 맥주와 파닭을 즐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일찍 잠을 청한다. 생활관은 3층 건물 중 2층에 위치하며, 2인 1실 숙소 50여 개가 마련되어 있다. 2층 건물 중앙에는 샤워장과 세탁실, 화장실 그리고 작은 휴게 공간이 마련돼 있어 TV를 시청하거나 음료를 마셨다.
저녁 11시 무렵, 잠에서 깨어 화장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불 꺼진 휴게실에 교육 동기 하나가 앉아 있었다. 광주 영업소에서 온 "기석"이다. 그는 화면에 깊이 몰입한 채 인기척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막 이름을 부르려다 멈칫했다. 그의 두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TV에서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큰 키에 곱슬머리, 그리고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동기였다. 그날 "기석"이가 흘린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은 그가 십 년 동안 꾹 눌러 참아온 "광주"의 아픔이었을 것이다.
▬중동 건설 현장은 침묵했다
중동 건설현장의 1980년 5월 18일은 평온한 일상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은 서울에서 온 노동자나, 대구에서 온 노동자나, 광주에서 노동자나, 누구도 말하지 않는 비밀이었다. 7월쯤 현장사무소에는 큼지막한 벽보가 붙었다. 광주에서 학생과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있었지만, 사회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안정적이니 근무에 열중하라는 내용의 공고문이었다.
중동 건설 노동자의 최다 구독률을 자랑하는 [밀물]지의 1980년 8월 소식이다. "최대통령은 지난 6월 5일 전두환 보안 사령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발표했다." 그리고 양 어깨에 별이 반짝이는 상임위원 30명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곁다리 3 스타 이희근 중장, 신현주 중장과 실세 스타 육군소장 노태우, 정호용 등이다.
또 8월호에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의 역사적 정화작업을 소개한다.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강력한 대응조치에 나선 정부당국은 5월 17일 드리어 내란을 음모한 혐으로 DJ 일당을 검거하는 한편 정치권력을 악용하여 수백억 대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거머쥔 부패 정치인들을 모조리 연행하여 자그마치 8백50억 원의 막대한 재산을 환수, 나라에 받치게 했다.
∴1980년 8월호 [밀물]지에서 발취한 정보입니다.
드디어, 새 시대 새 질서를 주도할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한다. 제11대 대통형 전두환 취임식은 1980년 9월 1일 상오 11시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거행한다. 전두환장군이 한번 째려보자, 겁 많은 임시대통령은 1980년 8월 16일 도망가버린다. 속전속결이다. 대통령이 도망가자, 같은 달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 7차 회의 소집된다. 전장군이 출마를 선언하자, 타 선수들은 겁에 질려 모두 숨어버린다. 단독 출마다. 2천5백40명 중 찬성 2524표로 당선된다.
중동 건설 현장의 이곳저곳에는 광주에서 온 이들의 침묵이 스며 있었다.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심장을 꾹꾹 찌르는 유언비어였다.
"폭도 중엔 북한 특수군이 있었다데",
"빨갱이들이 선동했다 안카나"
그런 말들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듯 흘러나왔다. 그 말들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광주에서 온 노동자들은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없이 자리를 떠나야 했다.
▬"광주 시민 여러분께"
중동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며 일하던 중동 노동자 시절, 저는 고국에서 들려온 광주의 소식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렴풋이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광주의 이름이 슬픔과 분노로 물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그날, 여러분이 겪으신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용기 있는 외침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그 숭고한 발걸음에 제가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광주 하늘 아래에서 흘린 눈물과 피, 그리고 서로를 지키려 했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합니다.
그날의 희생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며, 그 정신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고개 숙여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입사 동기 기석이에게도, 이제 그만 눈물을 멈추고, 꿈이었던 무등산 산자락에 햇살 가득한 작은 집 지어, 평안한 삶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참고 문헌 및 인용 관련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