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빗소리> 12월호는 참여 작가들의 2023년 발표글 중 가장 인상적인 한 편을 선정하여 공개합니다.
웹 동인지 형식으로 시작한 <숨 빗소리>의 한해를 되돌아보며, 새해엔 더 발전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연애
- 눈꽃
알고 지낸 지 오래된 동생 A는 40대 중반이지만 모태 솔로다. 직장에서 알게 되어 십여 년을 언니, 동생으로 친하게 지냈다. 키가 크고 살집이 있어 체격이 좀 크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성격이 여성스럽고 귀엽고 섬세하다. A가 모태 솔로라는 말에 처음에는 다들 의아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녀는 눈이 아주 높다. 아니 남들이 말하는 경제적 조건이나외모, 또는 직업처럼 확실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면 차라리 맞추기가 쉬웠을 것이다. 한 번은 소개팅에 나갔다 돌아와서는 “남자가 작아도 너무 작고 말랐어. 옆에 있으면 내가 더 큰 게 부각돼서 싫어.” 그래서 체격이 큰 사람으로 소개를 해 줬더니 “덩치가 커도 너무 커.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어. 끼리끼리 뭉쳐서 다닌다고 할거 아냐.”
그 이후로도, 카톡을 하는 데 상대방이 자꾸 맞춤법이 틀린다고 퇴짜, 프로필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퇴짜, 소개팅 나오면서 트럭을 타고 나왔다고 퇴짜... 그렇게 사람들이 해준 소개팅마다 트집을 잡았다. 그러던 중 드디어 우리가 봐도 외모나 성격, 직업 모두 흠잡을 데 없는 남자를 주선해 줬더니 “너무 완벽해서 부담스러워. 저런 사람이 왜 날 좋아하겠어.” 하며 또다시 퇴짜를 놓았다. 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좋으냐고 했더니 ‘그냥 필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이후론 주위에서 아무도 그녀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주지 않았고, 그녀는 지금도 프로~~~필에 강아지 사진만 주구장창 올리며 솔로의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솔로의 삶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거나 꼭 결혼을 해서 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누구보다 연애와 결혼을 원하기에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 또한 나를 사랑할 확률은 우주에서 떨어진 볍씨 하나가 사하라 사막에 박혀 있는 바늘에 꽂힐 확률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와 맞는 반쪽을 만난다는 건... 그래서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마 내 인내의 한계점을 끊임없이 시험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기만 해도 행운일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연애를 통해 자신의 인내심의 한계를 알게 되니까ㅠㅠ)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경험들을 한다. 행복한 경험, 아픈 경험, 기이한 경험 등. 그리고 그 경험들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중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은 연애가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 내밀하고, 복잡하며, 뜨겁고 치열하다. 타인이 내 의식으로 침잠해 들어와 내 정신과 감정을 흔드는 경험은 연애가 아니고서는 맛보기 쉽지 않다.
우리는 연애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 내가 견딜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의 밑바닥을 보게 해 준다. (연인끼리 싸울 때를 생각해 보라.) 반면 직장 동료나 친구들 심지어 가족들도 모르는 나의 사랑스러운(?) 여러 가지 모습들이 드러나면서 스스로도 놀란다. 그것은 때론 사랑스러움을 넘어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닭살스런 모습일 때도 많다.
연애라는 덫에 걸리지 않았다면 평생 발현되지 않았을 숨어 있던 DNA는 가끔 변형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어릴 때 하는 연애일수록 연인을 나 자신이라고 동일시 여기는 착각 속에 빠져 실패할 확률이 높다. ‘내가 곧 너’라는 착각. 내 속으로 낳은 자식도 이해하기 어렵고 마음대로 못하는 게 인생인데, 몇십 년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타인이 내 마음과 같기를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
뇌과학자들은 사랑을 900일의 폭풍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900일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도파민에 절여졌던 뇌도 제자리를 찾게 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연인들은 무엇으로 사랑을 유지할까?
나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사람들보다 연애를 오래 하는 사람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결혼은 법적인 제도나 자녀로 묶여 있기 때문에 깨기 힘들고 복잡하다. 그러나 연애는 그렇지 않다. ‘사랑’ 이외에는 그들을 묶어 둘 수 있는 장치는 없다.(꼭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ㅋ) 그래서 장기 연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혼 생활만큼이나 에너지가 든다. 믿음이나 배려 같은 항목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고 그 외에도 꼭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 두기다. 함께 있다가도 각자 돌아갈 수 있는 독립된 공간과 나만의 시간들.(나는 그래서 부부들도 각방을 사용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집착하지도, 너무 소홀하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행착오가 필요한데, 그것을 파악할 시간을 상대에게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타깝게도 사랑의 유효기간이 너무 짧은 탓이다. 그렇다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사랑이 지나가면서 그 자리에 다른 선물을 두고 갈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성숙’이라거나 ‘안목’, ‘추억’ 등의 다양한 이름이리라.
어떤 형태로 끝을 맺었던 나쁘기만 한 연애는 없다.(물론 폭력이나 불법적인 형태는 제외.)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만난 내 연애 상대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 공대생이었는데, 외모나 성격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2년 정도 지났을 때 친구가 내 남친이 다른 여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걸 봤다는 제보를 해왔다. 남친을 다그쳤더니 그냥 아는 친구라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에 넘어가 주었다. 며칠 후 한 낯선 여자가 전화로 남친의 이름을 대며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둘이 똑같은 팔찌를 차고 나왔기 때문이다. 여친과 헤어질 거라고 해서 만났다고. 그런데 갑자기 이별을 통보받아서 너무 힘들다고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티비에서 봤던 것처럼 머리채를 잡는 혈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반대로 마음이 아주 고요해졌던 특이한 경험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혼할 때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거 같다.(무슨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이란 말인가.) 잘못했다는 남친의 눈물에 6개월 정도 지옥을 겪으면서 만남을 지속하다가 그가 군대를 가자 우리는 비로소 이별할 수 있었다. 군대 간 그를 기다린들 그가 나를 또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 연애를 끝내면서 사랑은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가하며, 한번 깨진 신뢰는 어떤 방식으로든 복구되기 어렵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도 누구나 다 좋아할 만한 조건을 갖춘 그를, 명품백이나 비싼 외제차를 과시하듯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사랑을 통해 배운다. 그 사랑이 아픔을 주었다 해도, 나무에 박힌 옹이가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듯이 그 상처들이 우리 삶을 또다시 피어나게 만들 것이다. 연애는 내 삶의 거울이다. 평상시에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해 준다. 비록 추레한 나의 모습을 직면하여 괴로워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므로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
모태솔로 A는 아직도 사랑을 꿈꾼다. 백마 탄 왕자님은 이제 머리가 벗어질 만큼은 아니어도 노안 정도는 충분히 왔을 세월이건만 그녀의 왕자님은 영원히 마음속에서 늙지 않는다. 나는 A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떤 사람을 만날까 생각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참을 수 없는 건 무엇인지, 날 행복하게 하는 건 어떤 건지,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상처 입고 울게 되더라도, 그래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살다 죽는 것보다 사랑하다 죽는 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리이자 의무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사랑하기를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