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 / 2023. 12월호. 편집장의 단상_2
올해 여름부터 새로운 취미 생활이 생겼다. 바로 소설 쓰기다. 시도 종종 쓰지만, 시 쓰기를 취미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지속성에서 부족하달까. 시는 늘 쓰는 게 아니라 어떤 영감이 떠오를 적마다 아주 가끔씩만 쓰게 된다. 그렇게 써놓은 시에 그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제법 지속적으로 소설을 쓰게 됐다. 전업 소설가들처럼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는 없으니,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밤이나 주말을 이용해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어설프지만 무언가를 쓰고 있다. 잘 써지는 날엔 하루에 서너 문단 이상을 쓰고,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 날엔 전날 썼던 부분을 고쳐 쓴다. 아주 잘(?) 써보고 싶다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으나, 지금은 잘, 보다는 꾸준히, 천천히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부지런한 소설가들은 매일 조금씩 일정량의 소설을 쓴다고 한다. 조금은 그들을 흉내 내보려 한달까.
소설 쓰기를 요즘의 취미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즐거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는 게 괴롭다고 느껴지는 날엔 쓰지 않는다. 취미를 억지로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건 쓸 에너지가 아직 충전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런 날엔 차라리 전문 작가들의 소설을 읽거나, 다른 분야의 독서, 혹은 영상 시청을 즐긴다. 오래도록 해본 활동이 아니기에 나의 소설 쓰기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2023년 7월부터 삽입시가 들어가 있는 초단편 이야기를 월마다 하나씩, 그리고 일반적인 분량의 단편소설을 몇 편 써보았다. 마흔 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단편소설 하나 완결해 본 적이 없는데, 생각지도 못한 소설 쓰기에 재미를 붙여 현재 시 쓰기는 뒷전이 되었다. 경험에서 빌려온 소재들로 이제껏 많이 쓴 거 같은데,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을 나는 쓸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는 왠지 다른 차원의 영역이 시작될 것만 같다. 천천히 세상을 공부하고, 깊게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무언가 또 이야기가 태어나지 않을까.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다면, 첫 번째 인생에서 저지른 잘못들을 웬만하면 반복하지 않을 텐데. 더 잘 살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없다는 게 우리네의 한 번뿐인 인생. 그러나 소설가들은 처음 쓴 문장을 다시 고쳐 쓰면서, 마치 인생을 두 번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다고, 소설가 김연수는 썼다. 처음 그 얘기를 읽었을 땐 인생에 대한 소설가로서의 멋진 비유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소설 쓰기를 하다 보니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 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소설이 술술 쉽게 잘 써지지 않는다.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어색하다. 때론 백지에 새로운 문장을 써나가는 게 지루할 때도 있다. 그러나 결국, 읽는 이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쓰고자 하는 인내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어쨌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 편의 소설을 완결할 수 있으리라. 내게 소설 쓰기의 즐거움이 찾아오는 건, 그렇게 이미 다 쓴 초고를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고쳐나갈 때다. 인물의 대화, 말투, 시점이나 대명사와 조사, 수많은 비문과 이상한 전개 등이 다시 보인다. 처음에 쓸 땐 잘 모른다. 왜일까. 그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모든 인생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니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시간에 의해 앞으로만 나아가는 우리들. 과거를 생각할 수 있을 뿐, 두 번 다시 되돌아가 살 수 없는 우리들은 아무것도 없는 노트에 처음으로 쓰이는 소설의 초고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소설을 다 쓰고 나서 우리의 인생과는 다르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와 소설의 초고를 다시 쓸 때, 새로 고쳐 쓴 문장들은 (나한테 만큼은) 상당히 근사해 보인다. 두 번 쓴다고 말했지만, 그 문장에서 멈춰 나는 몇 번이고 그걸 고쳐쓸 수 있다. 소설 내용이나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내 마음에 들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이 소설은 한 번은 전부 살아본 소설. 나는 인물의 길을 처음부터 되밟는다. 그러면서 인물은(어쩌면 내가 투영된) 내가 원하는 인물의 모습이 조금씩 더 되어간다. 그럴 때 나는 소설 쓰기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낀다.
우리의 인생도 문장처럼 두 번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소설 쓰기를 취미로 삼으며, 고쳐 쓴 문장들처럼 조금은 비슷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 고심해서 다시 쓴 근사한 문장(지극히 주관적인)을 내 미래가 조금이라도 흉내 낼 수 있다면. 삶의 막막함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해소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캄캄한 터널 밖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숨 빗소리_ 12월_ 편집장의 단상>
숨 빗소리 - 발행인 겸 편집장. 스쳐가는 장소에서 건져 올린 시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과 사랑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