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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Oct 30. 2024

어린 아재

VOL.21 / 2024. 10월호. 이창호 연재소설_10화

어린 아재

- 이창호



 <제10화>


 만남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태양은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남자는 태양을 보고 눈을 피했다.

 "저기, 죄송한데요. 모자 한 번만 벗어볼래요?"

 "네? 제가 왜요?"

 남자의 목소리가 커지자, 동기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모였다.

 "당신 뭐야? 뭔데 여기 와서 목소리를 높여?"

 "그게 아니라 제가 누굴 좀 찾고 있는데, 이분이랑 비슷한 거 같아서요."

 실랑이가 길어지자 태양의 동기들도 모여, 마치 큰 싸움이 난 것처럼 보였다. 지수가 태양의 옷을 잡아끌며 귓속말을 했다.

 "오빠, 왜 그래?"

 "그 사건 범인이랑 덩치가 비슷해. 그날도 저 모자티를 입었던 거 같아."

 "확실해?"

 "모자를 벗으면 확실할 거 같은데, 머리 바로 아래 물고기 문양이 있어."

 "근데 모자를 어떻게 벗겨?"

 "그러니까 말이야, 강제로 했다가는 싸움 나겠는데."

 "그럼 일단 돌아가자."

 지수의 말을 듣고 태양은 돌아가기로 했다. 모인 사람들은 다들 제자리로 갔다. 태양은 현수막을 봤다. 서울 모 대학, 신방과라고 적혀있었다.


 남자는 태양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모자를 벗으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키웠다. 다행히 동기들이 모여 위기를 모면했다. 남자는 현수막을 쳐다보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런, 학교와 과를 보고 갔다면 분명히 찾아올 텐데.’

 남자는 친한 동기에게 부탁한 뒤 빠르게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급하게 간다. 잘 좀 말해줘."

 잠시 뒤. 태양은 미안하다는 핑계로 남자가 있던 펜션으로 갔다.

 "저기, 아까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좋은 술 나눠 마시려고 왔습니다."

 거나하게 취한 신방과 학생들은 술을 들고 온 태양을 반겼다.

 "아 저희는 벌써 잊었습니다. 가져오셨으니 그럼 한 잔 받겠습니다. 제가 여기 과대표입니다."

 "네. 저희는 인천에서 왔습니다. 법학도들입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자 다 같이 건배할까요? 위하여!"

 술을 넘기면서 태양은 눈으로 그 남자를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아까 그분은 어디 가셨나요? 얼굴 보고 사과하려고 왔는데요."

 "아 갑자기 부모님이 아프셔서 급하게 서울로 올라갔다네요."

 태양은 ‘아차’ 싶었다.

 ‘눈치를 챈 게 분명하다. 나를 알아본 거다. 어디로 도망칠지 모른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 가자.’

 태양은 조금 더 머무르며 어울렸다. 남자는 2학년이고 노량진역 근처에서 자취를 한다. 부모님이 철원에서 쌀농사를 꽤 크게 지어 돈 걱정 없이 공부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정보를 얻은 태양은 인사하고 다시 지수 곁으로 돌아왔다. 지수는 신이 나있었다. 태양을 보고 배시시 웃는다.

 "오빠, 이제 사과했으니까 술 마시고 재밌게 놀자! 응?"

 "그래, 마시자. 다 같이 청바지!"

 "청바지? 그게 모야 갑자기."

 다들 태양을 쳐다본다. 청바지가 무엇인지 생각도 해본다. 태양이 실실거리다, 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청춘은 바로 지금... 청바지!"

 "형 그거 우리 아빠가 하는 거 같은데..."

 어이없다는 듯 태양이 지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거 몰라? 진짜 몰라?"

 "오빠 우리 엄마랑 술 마시러 갈래?"

 지수 덕분에 다 같이 박장대소했다. 태양도 껄껄거리다, 술 한 잔 들이켰다. 태양은 머릿속에 그 남자 생각이 아직 있었다.


 다음날. 남자는 철원행 버스에 올랐다. 본가에 가, 부모님에게 해외로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다. 남자의 아버지는 평생 농사만 지은 사람으로, 아들이 공부하겠다고 하면 반대한 적이 없다. 아들은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걸리니?"

 "만약 박사까지 하면 10년이 걸릴 수도 있죠."

 "돈은 얼마나 드니?"

 "초반에는 매달 천만 원씩은 들 거예요. 시간이 지나서 제가 알바를 하면 점점 줄어들겠죠."

 "매달 천만 원이면, 만만치 않구나. 군대는?"

 "잘하면 영주권 받아서 안 갈 수 있고요, 중간에 제대하고 다시 미국 갈 수도 있어요."

 "학교는?"

 "휴학하고, 학점 조금 더 채우면 미국 대학으로 편입도 가능할 것 같아요."

 "집까지 찾아와서 말하는 걸 보니, 이미 마음먹었구나. 그럼 제대로 한 번 알아봐라."

 "네, 감사해요."

 태양은 민훈과 동걸이를 데리고 노량진역 주변을 탐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부 상인들에게 연락처를 남겼다. 잠시 뒤 태양은 민훈과 동걸이에게 노량진역을 맡기고 그 대학 인근 전철역을 뒤졌다. 전철역부터 학교로 가는 길도 훑었다. 셋은 돌아가며 며칠 동안 탐문했다.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를 찾아갔다. 신방과 사무실로 가는 길 MT에서 알게 된 과대표를 만났다. 태양과 과대표는 인사를 나눴다.

 "아 그때 그 과대표님!"

 "어,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세요?"

 "아무래도 그때 그분이 제가 아는 사람이 맞는 것 같아서요."

 "아 그 친구요? 휴학했다는 거 같던데요. 이쪽으로 와보세요."

 과대표는 과사무실로 셋을 안내했다. 교직원에게 그 남자 신상을 물었다. 휴학한 게 맞았다. 태양은 손으로 무릎을 쳤다. 그리고 교직원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혹시 그 친구 연락처나 주소가 있나요? 제가 아는 사람 같아서, 한 번 찾아가 보게요."

 "죄송하지만 개인정보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위반사항이에요."

 "네... 가자."

 며칠 뒤. 인천의 한 카페. 태양과 지수는 즐겁게 대화하고 있었다. 방금 보고 나온 신작영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다 태양이 또 옆길로 샜다.

 "그러니까 이 영화처럼 그 사건 범인도 해외로 도피할 수도 있다니까."

 "또 그 얘기야? 휴학해서 찾지도 못한다며, 경찰에 다 얘기했으니까 이제 잊어."

 "그래 알겠어, 애들 언제쯤 온대?"

 "곧 올 거야."

 태양과 지수는 민훈과 동걸이, 진주와 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숨 빗소리_ 이창호 소설>


이창호 - 현직 기자. 책 <그래도 가보겠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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