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3 / 2025. 10월호. 시의 노래_2
비에 젖은 비누
욕실 비누가 왜?
당신은 의아하겠지
어릴 땐 세숫대야와 수도
지붕 없는 마당 한편에 있어
재떨이 같은 비누 받침대와
비누칠이 싫었지
나를 마당 구석에 앉혀놓고
내 얼굴에 박박
비누칠을 하는 사람 앞에서
눈이 맵다며 매일 매일
찡그리기만 했던 날
사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내게 머물렀던 것뿐인데
비누는, 그 손길은
거친 듯 부드럽게
깨끗이 닦아주면서
점점 작아지던 그 반쪽
비누와 내가 언제고
자리를 바꾸고 앉아
이번엔 비 맞은 비누를
닦아주고 있다, 내가
점점 더 녹아
사라지는 비누를
비에 홀딱 젖은 비누
같은 사람을
허민 – 2015년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으로 시를, 2024년 계간 『황해문화』 창작공모제를 통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