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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VOL.34 / 2025. 11월호. 짧은 소설_11

by 숨 빗소리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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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 가을, 첫사랑이 떠나갔다. 그때 난 최전방 GOP근무 중인 육군 병장이었다. 밤샘 야간 경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초소 내무반의 공용전화로 전화를 걸었는데, 수화기 너머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연하의 신입생을 새로 만나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만 헤어지자고.


2

2005년 봄, 제대 후 복학한 나는 2학년 때까지 기거하던 하숙집을 떠나, 학교 근처에서 월 18만 원짜리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다. 기존 하숙방은 욕실 크기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독실이었으나, 아침과 저녁 식사를 준다는 조건으로 35만 원의 하숙비를 요구했다. 금액도 부담이었지만 1, 2학년 때의 내 생활 패턴을 보건대 가성비가 너무 떨어졌다. 친하지도 않은 하숙생들과 부스스한 얼굴을 맞대고 아침부터 식사를 하는 것도 부담이었고, 학과 행사나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 약속(이제 데이트는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때문에 하숙집 저녁밥은 거르기 일쑤였다. 결국 한 평 남짓한 하숙방에서 잠만 자는 셈이었는데, 그 많은 돈을 온전히 내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고시원 건물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으로 이뤄진 낡은 빌딩이었다. 지하는 공동으로 쓰는 식탁, 냉장고 따위가 있는 부엌이었고, 1층은 공용 세탁실과 샤워장이었다. 얇은 벽이 각 호실의 경계를 간신히 나눠주는 방들은 2층부터 위치했는데, 2층은 여자, 3층은 남자 전용으로 구분돼 있었다. 노트북 모니터만 한 크기의 창이 달린 가장자리 방들은 특별히 고시원비 만 원을 추가로 요구해서, 난 그냥 3층의 창문 없는 평범한 18만 원짜리 방을 골랐다.

난생처음 시작한 고시원 생활은 당연히 낯설고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일단 방 크기도 하숙집의 자그마한 독실보다도 작았다. 양팔 너비 책상 아래 공간으로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일인용 침대가 무슨 레고 블록처럼 끼어져 있었고, 스탠드 옷걸이는 고사하고 벽옷걸이에 당시 교복처럼 입고 다니던 청바지와 티셔츠 들을 걸고 나면 공간이 꽉 찼다.

괜히 옮겼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거의 잠만 잘 것이기에 웬만한 건(공부나 식사 같은 것) 다 학교나 밖에서 해결하면서 견뎌내기로 했다. 그러나 고시원 생활의 진짜 불편함은 다른 데에 있었으니, 그걸 아는 데엔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3


고시원 생활 첫날밤 1층 샤워장에서 샤워를 마치고 올라와 302호실 내 방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하숙을 할 때도 욕실은 공용이라 혼자만 오랜 시간을 두고 사용할 수 없어, 주로 방에서 개인 헤어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리곤 했다. 그때 쓰던 필통만 한 크기의 작은 헤어드라이어를 고시원에도 가져와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응? 무슨 소리지?’

누가 찾아왔나 싶어 나는 302호실 내 방문 밖으로 빼꼼히 고개만 내밀어 마룻바닥으로 된 고시원 복도를 살펴봤다. 문 앞은 물론이고 좁고 긴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별생각 없이 방 안의 작은 벽 거울을 보면서 계속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는데 다시 ‘똑똑똑’ 소리가 났다. 이번엔 소리의 진원지를 확실히 알았다. 그것은 내가 몸을 기댄 채 서 있는 침대 옆 벽에서 난 소리였다. 벽을 가만히 짚어보니 그것은 단단한 콘크리트벽이 아니라 합판을 대놓은 듯한 얇은 나무벽이었다. 벽 너머의 누군가 이쪽을 향해 부러 ‘똑똑똑’하고 소리를 낸 것이다. 나는 방을 나가서 기역 자의 복도를 돌아 내 벽 방향의 호수를 찾았다. 벽을 두드린 건 308호가 확실해 보였다.

‘뭐지, 왜 두드린 거지?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시끄럽다는 건가?’

나는 방에 돌아와 헤어드라이어를 다시 작동하려다 말았다. 왠지 마음이 찝찝했다. 고시원 생활은 이런 것인가. 이런 사소한 생활 소음조차 낼 수 없는 곳이란 말인가. 머리카락을 덜 말린 채로 좁은 침대에 누웠다. 하숙집에서의 습관대로 외부 스피커가 달린 워커맨을 그냥 켜려다가 유선 이어폰을 먼저 꽂았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이어폰을 귀에 가져가니 익숙한 곡이 흘러나왔다. 실연 후 몇 달 동안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던 이별 노래였다.

잠시 노래를 듣다가 이어폰을 다시 귀에서 뺐다. 바로 옆 벽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잠자코 있었다. 누운 채로 팔을 올려 전등 스위치를 껐다. 캄캄한 칠흑이 순식간에 좁은 방을 가득 메웠다. 방이 너무 작아서, 이 어둠조차 저 벽 너머로 흘러넘치지 않을까 싶은 밤― ‘똑똑똑’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4


대신 그 밤 내내 들려온 소리는 그 얇은 벽을 흔들어 댈 만큼 커다란 코골이 소리였다. 바로 옆방에서 들려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방 사람의 코골이가 이토록 생생히 들리는 건가.

‘머리도 말리지 못하게 했으면서, 지는 저렇게 코를 곤다 이거지?’

나는 침대 위에 그대로 일어나 앉아 벽에 천천히 귀를 대보았다. 코 고는 소리가 더 선명하고 크게 들렸다. 코골이의 주인공은 옆방, 그러니까 벽 너머의 308호가 분명했다.

‘나라고 이대로 당할 수 없지.’

핸드폰 액정화면 속 시간은 밤 12시. 나는 캄캄한 어둠 속 보이지 않는 옆방을 향해 마치 노크하듯 벽을 두드렸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소리로. 그러나 분명히 내 의사가 전달되도록.

“똑- 똑- 똑-.”

그러나 308호는 너무 깊게 잠이 들었는지 코골이를 멈추지 않았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한 번 더 벽을 두드려야 할까. 너무 크게 두드리면 다른 방에게도 피해를 주는 거 아닐까. 그렇지만 이토록 가까운 코골이 옆에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자신이 없었다.

“똑! 똑! 똑!”

이 정도면 잠결에도 들었겠지. 효과가 있던 걸까. 코 고는 소리가 뚝, 하고 그쳤다. 잠에서 잠시 깼을지도 몰랐다. 그래, 너는 실컷 잤으니 이제 나도 좀 자자.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머지않아 코골이는 다시 시작됐다.

“드르렁 푸―, 드르렁 푸―.”

미칠 노릇이었다.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귀까지 막았다.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유선 이어폰이 그대로 연결된 워커맨을 다시 켰다. 하지만 자정 너머의 고요한 이별 노래는 나를 보호해 주는 두꺼운 벽이 돼주지 못했다.

그렇게 내 고시원 생활은 옆방의 커다란 코골이와 함께 시끌벅적 막이 올랐다.


5


그 이후로도 308호의 코골이는 변함이 없었다. 고시원 생활을 스스로 선택한 이상 다른 방도는 없었다. 한낮에 308호에 찾아가 코 좀 골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내가 코골이 수술을 시켜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결국 늦은 밤 벽을 두드리는 일도 다른 방에게 피해가 갈까 봐 그만뒀다.(벽을 두드려봤자 코 고는 소리가 멈추지도 않았으니까) 내 나름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의 코골이 소리가 들리면 ‘또 시작됐구나―’하고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킨 후,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곡의 볼륨을 높일 수밖에.

그런데 308호의 문제는 코골이뿐만이 아니었다. 기침소리, 방귀소리, 심지어 핸드폰 알람소리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는 첫날부터 내 헤어드라이어 소리를 제지시켰으면서, 그 크기에 준하거나 혹은 그 이상인 자신의 생활소음은 특별히 줄이거나 감추지 않았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냐? 완전히 이기적인 놈이네.’

코골이 소리로만 들었을 때는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일용직 노동자나 중년의 아저씨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간혹 들려오는 핸드폰 통화 목소리로 짐작건대, 그는 내 또래 학생이거나 많아봐야 서른 초반의 젊은 사내였다.

‘저 정도 코골이라면 몸에 어디 병 있는 거 아냐? 빨리 병원에 입원이나 해라.’

그러면 안 되지만 나중엔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6


실연의 상처도 점차 아물고, 고시원 생활도 적응이 돼가던 그해 가을이었다. 이제 나는 이별 노래 듣기도 그만두었고, 308호의 코골이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 정도가 되었다. 아침에 울리는 그의 핸드폰 알람 소리에 같이 기상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다.

복학한 대학 생활에서도 다시 즐거움을 느꼈다. 비록 복학생이지만 문학동아리에 뒤늦게 가입해 열정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새로 호감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취업에 대비해 학과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동아리 합평회가 있던 날, 학교 근처 술집에서 늦게까지 뒤풀이를 하고 자정 무렵 고시원에 돌아왔다. 약간의 취기를 머금은 채 고시원 계단을 터덜터덜 밟고 올라와 3층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복도를 지나올 때 늦은 밤 조용할 줄만 알았던 고시원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방에 들어오니 그 소리는 더 선명해졌다. 벽 뒤 308호의 소리였다. 그는 밤늦게까지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이제 밤늦게 전화 통화까지… 거참, 해도 너무하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양치를 하러 가기 위해 간단한 세면도구를 챙기고 다시 방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벽 너머 308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안 돼… 흑흑, 못 헤어져. 제발 끊지 마.”

308호, 여자 친구가 있었나? 근데 지금 이별 통보를 받은 건가. 이미 차였는데 술 취해서 여자한테 전화를 한 건가. 호기심이 생긴 나는 방을 나가려다 말고, 다시 침대 위에 앉아 벽에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7


가만히 들어보니 그는 삼 년간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있었고, 어제 그녀와 헤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그는 오늘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고시원에 돌아와 술에 취한 채 다시 옛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워낙 방음이 안 되는 곳이다 보니 낯 모르는 이의 사연을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될 줄이야. 이미 첫사랑의 아픔을 겪은 나인지라 얼굴도 모르는 308호 남자가 갑자기 딱해 보였다. 오래지 않아 말소리는 끊어졌다. 아마도 수화기 너머 여자가 전화를 끊은 것이리라.

평소 코골이와 잦은 소음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던 옆방 남자였지만, 왠지 그 순간은 미운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그 방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전등을 끄고 난 어둠처럼 질긴 침묵이었다.

‘훌훌 털고 일어나길 바랍니다. 시간이 약이에요.’

그렇게 속으로 말하며 다시 샤워장으로 가려는 찰나, 다시 ‘흑흑’거리는 308호의 울음이 들려왔다. 전화를 끊고 나서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이 밀려오는 듯했다. 울음소리는 처음보다 더 커졌고, 고요한 자정의 고시원 전체를 캄캄한 슬픔으로 뒤덮기 시작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말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의 눈물. 그것이 왜 나를 울적하게 하는가. 코골이로 매일 나를 괴롭히던 그였는데. 그의 서러운 울음은 멈출 기세가 없었다.

그때 문득, 책상 위에 놓인 워커맨과 한쪽 구석에 밀어두었던 ‘동물원’의 8집 앨범 테이프가 눈에 들어왔다. 실연 후 지난 계절까지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던 곡이 바로 그 앨범에 수록돼 있었다.

“흐흑… 흑흑…”

여전히 그치질 않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만히 앨범의 트랙을 되감기했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던 그 곡을 어째서인지 308호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워커맨에 연결된 유선 이어폰을 잠시 제거하고 외부 스피커로 음악을 켜기로 했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워커맨의 스피커 자리를 벽에 가만히 대주었다. 노랫소리의 볼륨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그의 울음에 그 노래가 닿기를 바랐다. 오랜만에 익숙한 곡을 들으니 왜 내 마음도 다시 뭉클해지는지.

어느 순간 그의 울음이 멎었다는 걸 알았다. 벽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도 잠시 울음을 멈추고, 옆방에서 아련히 흘러나오는 이별 노래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미소를 머금고 두 손을 흔들며

오월 바람에 꽃잎 날리듯 가볍게

그러나 조금은 눈물겹게 그렇게

저리는 아쉬움 가득하지만

기다림 속에 다가올 외로움들을

따사로운 축복의 말로

대신하며

우리 그렇게 헤어지기로 해

나 오늘 떠나는 그대를

이토록 사랑하지만

묻고 싶던 그 수많은

이야긴 가슴에 묻어 두고


나를 사랑했었다는

그 확인이나 어떤 다짐도 약속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지기로 해*

(…)


- 끝-



* 동물원 8집 중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2001 (음악듣기)



허민 – 2015년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으로 시를, 2024년 계간 『황해문화』 창작공모제를 통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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