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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Apr 04. 2020

한밤중 드라이브


겨울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싹을 틔우고 활짝 핀 꽃처럼 

지금 이 자리 굳게 지켜서 

가장 아름답게 꽃을 피워 볼 거야 





왼쪽 팔등 위에 큰 주삿바늘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난, 채취 다음날 밤, 알 수 없는 복통으로 응급실에 다녀왔다. 7번 채취하면서 아무 일 없었다고 배짱을 부리고 아무 생각이 없다고 잘난 척을 했더니 바로 탈이 났다.  


난자는 소박한 바람을 이뤄주고 100% 수정이라는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 딱 2개가 채취되었다. 남편은 글에다가 라도 욕심을 좀 부려봐야 했다고 했다. 익숙한 과정답게 20분 전에 병원 도착해서 여유롭게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치고 채취하러 들어갔다. 사람도 별로 없었고, 시술 준비도 선생님 도착도 빨랐는지 모든 게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링거를 꽂자마자 이름이 불리고 채취실로 향한다. 익숙한 장소, 냄새 그리고 선생님. 기침과 함께 마취 그리고 깨어남. 다음 병원 일정을 확인하고 채취실 밖으로 나간다. 보통은 채취를 하면 점심때쯤이 되는데 오늘은 한참 오전이라 신기했다. 


밤 10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복통이 느껴졌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 너무 아파 정신이 혼미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침대를 데굴데굴 굴렀다. 실제로 아파보니 말 그대로 구른다. 빨래 짜듯 아래 뱃속이 계속 뒤틀렸고 속은 메슥거렸고 헛구역질에 났다. 뭔가 일이 났구나. 간호사가 설명해줬던 주의사항에 하나하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30분이 지나도 복통이 멈추지 않자 결국 응급실로 향한다. 


그동안 난자를 채취하면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이번엔 컨디션이 오히려 좋았다. 피가 나올지 모른다고 병원에서 챙겨준 생리대는 쓸 일이 없을 정도로 이번엔 피 한 방울도 없이 깔끔했다. 보통은 2-3일 정도는 피가 나온다. 난자 2개에 복수 찰 일도 없고, 시술 시간도 다른 이들보다 짧았을 테니 몸에 무리 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에 엄격하게 통제를 받으며, 심지어 남편은 응급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혼자 들어가서 진료를 받았다. 응급실에선 콜을 받은 산부인과 선생님이 뛰어오시고 나에겐 엄청난 질문들이 쏟아진다. 10 이요!라는 통증점수 (NRS) 대답에 다급 해지는 의료진. 한밤중에 이루어진 피검사, 소변검사, 초음파 검사. 그러나 모든 수치는 정상이었고, 초음파를 통해 자궁 및 난소도 이상소견이 없었다. 그렇게 코로나 덕분에 나 홀로 (응급실에 나 한 명, 의료진 4명) 특별 케어를 받으며 두 시간 가까이 검사하고 질문을 받다 보니 복통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통증점수 2. 남아있는 통증에 귀가조치를 망설이던 선생님은 집에 가서도 복통이 지속되면 다시 오겠다는 약속에 고개를 끄덕이신다.  


몸도 지쳤나 보다. 아니 지칠만 하다. 태생이 면역력 갑이라 마음 아픈 것만 신경 썼더니 이제 몸도, 없는 난자를 쥐어짜 내는 게 지쳤다고 신호를 보내나 싶기도 하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내 인생 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버티고만 있는데,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지. 이 시기도 그리고 망할 코로나도 언제쯤 지나가련지. 끝이 보이지 않는 생각에 머리만 복잡하다. 복통이 사라지니 집에 오는 길에서야 비로소 길가에 활짝 핀 벚꽃들이 보인다. 이 시기가 지나가길 바라며 시간을 멈춘 채 숨어있을 때, 세상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꽃들은 긴 겨울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가장 화려하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봄을 알리고 있다. 잠시 창문을 내려 새벽 봄 공기를 마셔본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시간에 드라이브하니 좋네”라는 말에 남편은 그제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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