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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ay 29. 2020

두둥, 이식


드디어 내일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두 번째 이식을 내일 한다. 서로 팩트만 이야기하는 사이인 선생님께 ‘떨린다’고 감정을 드러내니 ‘이번엔 잘 되어야지’하고 담백한 답변이 돌아온다. 사실 지난달 이식이 결정되고 드디어 이식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기쁨은 잠시였고 시험관 모든 것에 대해 넌더리가 났었다. 냉동 이식이 끝난 시점도 아니고 시술에 실패한 시점도 아니고 그렇게 기다렸던 순간이 다가오자 바로 이상한 청개구리 심보가 터진 것이다. 브런치 포스팅 공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험관에 대한 내 감정을 적는 일조차 싫었다. 아니 지겨웠다. 생리가 시작되고 병원에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을 때에도 병원에 갈지 말지 한참을 망설였다. 왠지 다음 달이 더 좋을 것 같았고 여름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괜히 다음 달에 있을 이사도 걸렸고, 시험도 걸렸고, 여러 가지 해야 할 일 들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이런 복잡한 마음에 선생님이 ‘이번 달 몸 상태가 안 되겠는데’라고 말해주신다면 금상첨화일 것만 같았다. 계속 복잡해지는 마음을 들여다보니 소심한 반항으로 변장한 두려움이 있었다. 할머니들이 이불 속 밑에 쌈짓돈 묵혀두고 손주들이 올 때나 뜨끈해진 동전을 조심스레 꺼내는 것처럼 일 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 깊숙이 숨겨놓았던 배아 4개를 꺼내야 하는 시간이 오니 겁이 났다. 오랜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다음 나에게 펼쳐질 다른 일 년이,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가 미리 무서워졌다. 하지만 도망가기엔 내막 두께가 너무 좋았다.


이식을 3일 앞두고 병원에 가니 먹어야 할 약과 맞아야 할 약들이 엄청 주신다. 많은 약들을 들고 집에 오는 길에 이식 전 3일이라는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식 전에 끝내야 할 이사 서류 준비가 있었고, 학생들 중간고사 시험이 있었고, 반납해야 하는 책들도 눈에 띄었다. 날씨가 좋으면 따릉이를 한 번 더 타고 싶었고, 당분간 못할 집안 청소도 해야 했다. 복분자, 두유, 추어탕 등 이식하자마자 먹을 음식들도 미리 준비해야 했고, 데드라인이 있는 모든 일들을 미리 처리해야 했다. 지난 이틀간 열심히 움직여 이사에 필요한 모든 서류 작업을 끝냈고, 오늘 학생들 중간고사를 무사히 치렀으며, 따릉이 대신 햇살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동네 한 바퀴를 걸었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오늘 두유 도착을 마지막으로 인터넷 주문이 완료되었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정성스럽게 끓여준 미역국을 친정집에서 한 솥 챙겨 냉장고에 넣어두며 이식준비를 완료했다.


내일 잘하고 오겠습니다.

용감하고 담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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