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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un 10. 2020

1차 피검사 결과

갑자기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났다. 첫사랑 제니가 떠나버린 어느 날 갑자기 뛰기 시작한 포레스트처럼 나도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뛰고 싶어 졌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간호사님은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감정이 투명하게 잘 보였다. 오후에 연락 주겠다고 활기차게 인사 나눴던 오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어색하고 긴장한 첫인사에서 결과를 예상했다. 성실하게 열심히 지낸 날들치고는 참담한 결과였고 2차 피검사 근처도 못가보고 이번 이식 시도는 깔끔하게 끝이 났다. 담담하게 날 응원해줬던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나는 운동복을 찾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친구 따라 덩달아 10km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 나는 ‘탕’ 소리를 듣고 뛰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심장은 터질 것 같은데 멈추지도 못하고 계속 뛰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는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이 빨간불로 바뀌는 긴박한 순간에도 내 인생에 달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포레스트처럼 뛰기 위해서 운동화를 신는다. 심지어 마스크를 쓰고, 6월이지만 한여름 날씨를 자랑하고 있는 오늘 말이다. 


오랜만에 뛴 까닭에 금세 숨이 거칠어지고 맹렬하게 내리쬐는 햇살로 온 몸이 바로 땀으로 젖었다. 숨이 벅차 마스크 안에서 헐떡이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름에도 불구하고 계속 뛰었다. 그동안 빈 자궁을 두고 불면 날아갈까 건드리면 깨질까 조심스럽게 지켜왔던 모든 행동들을 걷어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쿵쾅 거리며 뛰니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땀이 뚝뚝 흘렸지만 속은 뻥 뚫렸다. 오늘 아침 병원 가는 길, 남편의 급브레이크에 배를 움켜쥐고 화를 내지 않아 다행이었고, 어제까지 먹고 싶던 음식을 마음속으로만 생각한 것 또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내 온몸의 힘을 양 발에 실어 땅의 지면을 내 맘대로 밟고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이제 멈추지 않으면 집엔 택시를 타고 돌아가야 하고, 그러기엔 지갑이 없는 걸 깨달은 후에야 멈췄다. 


멈춰 선 그곳엔 해가 지고 있었고, 뜨거운 바람이 시원한 바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빠른 속도로 뛰고 있던 심장이 천천히 원래 속도를 찾았고 거칠게 내쉬던 숨도 가라앉았다. 그렇게 한참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그곳에 서 있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는 자신의 달리기에 대해서 과거를 묻고 새로 시작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My mama always said, “You got to put the past behind you before you can move on.” And I think that’s what my running was all about. - 영화 <포레스트 검프> 대사 중에서 


오늘의 달리기로 ‘나도 포레스트처럼 지나간 일은 잊고 새로 시작해야지!’하고 결론내기엔 오늘 내 마음이 거기까진 따라 주진 않는다. 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내 삶의 색이 달라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을 필터 없이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건, 괴로운 어떤 현실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고, 과거는 묻을 수 있다는 것. 암튼, 내일도 뛰어보려고 한다. (택시비를 들고) 


Run, Amy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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