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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un 07. 2020

냉동 이식, 그 이후

+8일




깜빡깜빡 하는 날 위해 

아침 점심 저녁 해야할 일들을 적고 

하나씩 지우며 미션 클리어

이렇게 하루가 간다 





이식을 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초조함이 올라온다. 이때쯤이면 꿈에 동물 한번 나와 줘야 할 것 같고, 와이존 정도 콕콕거린다거나 잠이 더 온다거나 하는 미세한 무언가가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고요하다. 그렇다고 미리 임신테스트기를 써볼 배짱은 없다. 괜히 난임 온라인 카페에만 무한 방문 중이다. 


착상은 신의 영역이지만 이식 이후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배가 된다.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밤마다 비는 것처럼 정성 값이 필요해진다. 이식한 아이들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매일 8시간마다 약을 먹고 질정을 넣는다. 이 약과는 별도로 아침과 저녁식사 이후에 또 다른 약을 먹고 저녁엔 또 아스피린 한 알 추가, 그리고 오전 배 주사. 너무 헷갈려서 모든 시간마다 알람을 맞춰놓았더니 하루 종일 알람이 울린다. 몇 시간마다 울려대는 알람만 듣고 있어도 지치는데 정성 값 들이는 게 이것뿐이 아니다. 매 끼니때마다 미역국, 추어탕, 소고기 등을 돌려 먹고 매일 복분자 한잔, 두유 한 개, 구운 계란 한 알, 요거트, 견과류. 각종 과일 등을 먹으면서 ‘잘 챙겨 먹을 걸’ 이란 후회가 없도록 열심히 챙겨 먹으며 오동통 해지는 중이다. 또한 저녁에는 집 주변을 20분씩 걸으면서 운동 아닌 운동도 해준다. 


그런데 이렇게 할 일들이 많았던가. 작년 시험관 1차 이식 때에는 어땠는지 떠올려보지만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지워진 건지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막상 이식을 하고 수많은 약들과 주사를 몸에 들이붓고 있으려니 난저라서 긴 시간을 두고 이식을 해야만 했던 것이 다행였구나 하는 아이러니한 생각이 든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지리멸렬함이고 몸에게 못할 짓이다.   


난 지금 너무나도 편안하고 고요한 몸을 느끼며 머리로 열심히 리스트를 만드는 중이다. 만약 안 되었을 경우, 내가 할 일들을 생각해보고 있다. 매일 밤 걸으면서 남편에게 말해준다. ‘이번에 실패하면 말이야, 이 뱃살이 없어질 때까지 달릴 거야. 앞머리를 잘라볼까? 파마를 해야지. 테니스를 해볼까? 피부과도 가야겠다.’ 그렇게 수만 가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두고 나면 이상하게도 조금 위로가 된다. 


알고 있다. 머릿속이 아무리 복잡해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라는 것. 첫 번째 피검사 날까지 지금처럼 똑같이 지내기. 가장 심플하면서도 어려운 미션이 남았다. 쫄리는 마음을 달래며 내일도 오늘을 보낸 것처럼 잘 지내봐야겠다.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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