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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Oct 29. 2020

에필로그

41살 임준생 마지막 이야기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다시 되묻는다. 


“네? 임신이요?"


마지막 이식 실패 이후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잠시 쉬고 싶다는 말에 선생님께서는 다음번엔 미혼 때 얼려두었던 난자 5개를 써보자고 하셨다. 내 독수리 오 형제를 써야 한다니.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언젠가는 쓸 줄 알았지만 벌써 쓰자고 하실 줄은 몰랐다. 이제 좋은 난자가 안 나오려나? 30대에, 그래 봤자 39살에 얼려둔 난자면 다음 차수엔 가능성이 있으려나? 이것마저 실패하면 난 어떻게 될까?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오갔지만 잠시 동안만이라도 모든 생각, 걱정,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그냥 쉬고 싶었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남편과 편의점으로 달려가 만원에 맥주 4캔을 샀다. 카페에서 맘 편히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끼니때마다 챙겨 먹던 수많은 영양제들을 잠시 찬장 안에 넣어두었다. 매일 10시면 잠들었던 일상도 뒤집었고 아! 타코와사비도 먹었다. 그동안 못했던 것, 참았던 일들을 하나하나 즐기며 편히 쉬었다. 시술이든 채취든 뭐든 실패 후 두 번째 생리는 항상 늦어졌던 터라 늦어지는 생리에도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일주일이 넘어가고 열흘째 되자 진짜 늙어버린 몸이 된 건가 싶어 집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리고 임신 이야기를 들었다. ‘임신입니다’라는 그 짧은 다섯 글자가 안 믿겨 묻고 또 물었다. 


전 달에 이식은 실패했지만 1차 피검사 때까지 온몸에 쏟아부었던 호르몬 약 기운들이 남아 도움이 되었나, 그동안 몸을 만들어놓은 게 효과가 있었나 싶다가도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임신이라니. 나와 남편은 임신이라는 이 현실을 한동안 믿지 못했다. 몇 주가 더 지나 심장소리를 듣고도, 입덧에 헛구역질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마주한 감사한 현실에 제대로 기뻐하지도 못한 채 숨죽이며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배가 조금씩 나오고, 뱃속에 있는 아기가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마침내 임신이라는 현실에 감사하며 기뻐하고 있다. 


취준생 (취업준비생)의 목표 달성은 회사 합격이듯, 임준생 (임신 준비생)은 임신이려나. <41살 임준생> 이란 제목에서도 보이듯 올해엔 끝을 보고 싶은 바람을 담아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아이 소식을 전하며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물론 취준생이 회사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야 하듯, 나도 임신을 잘 유지해서 건강하게 출산하는 일이 남았지만 말이다. 


오늘도 병원에서 긴 대기시간을 버티며 시험관 시술을 위해 힘겹게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힘들었던 시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그리고 더 복잡한 상황 속에서 엄마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 하루도 버팀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예비 엄마들. 어떤 기다림과 힘겨움이 있음을 잘 알기에 ‘저는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에 복합적인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글을 쓰는 이유는 비록 어느 누군가의 작은 기록 일지라도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이야기가 되길 바라고,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글을 읽으며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그동안 응원해주셨던 많은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41살 임준생>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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