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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Oct 19. 2020

우리 집 '귀염이'  

“우리 개 키울까?”라고 말하자 나를 너무 잘 아는 남편이 놀라 쳐다본다. 완벽하게 예상한 반응이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실 나는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아무리 귀여운 개를 보더라도, 다가가서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대신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간다. 유튜브에서 개가 나오는 귀여운 영상을 한참 보고는 있지만 그런 생명체가 내 옆에 있는 건 상상이 안된다. 친한 친구 중에 유기견 봉사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버려진 개들을 집에 데려오는 걸 보면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란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버려진 개들은 일정 시간 안에 새로운 주인이 생기지 않으면 안락사된다는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아팠지만, 나에겐 개는 개 일뿐, 굳이 내 마음을 주는 상대는 아니다.  


내가 7살 때, 마당이 있는 2층 집으로 이사를 왔다. 계속 아파트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오게 되었는데, 마당에는 진달래, 철쭉, 개나리, 목련, 라일락 외에도 이름모를 나무들과 꽃들이 많았다. 비 오는 날에 그 집 마당에서 맡았던 흙냄새는 아직도 기억한다. 암튼 엄마 말에 따르면 아파트에서 공주처럼 집과 유치원만 오가며 살다가 주택으로 이사 온 순간 뭔가 탁 풀리듯, 한 번 밖에 나가면 좀처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이랑 뛰어 노느라 그렇게 바빠서 하얀 피부가 일주일 만에 바로 새까매졌다고 했다. 내가 이사 갔던 그곳은 지금은 사람들이 가득한 바쁜 거리가 되었지만 이사 올 당시만 해도 길에 아스팔트조차 깔리지 않았었다. 난 그렇게 동네 흙길에서 꽃과 나무가 가득했던 마당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며 지냈다. 그리고 앞집 친구가 키우던 개 ‘곰순이’이가 새끼를 많이 낳은 어느 해에는 우리 집에도 개가 한 마리 생겼다. 흰색과 갈색이 섞인 똥개였는데 무척 귀여웠다. 한 번도 개를 키워봐야겠단 생각을 못하고 있던 터라 갑자기 나타난 새 식구가 낯설었지만, 옆집도 뒷집도 앞집도 다 개를 키우고 있어서 큰 고민 없이 키우기로 결정했던 것 같다. 이름은 보자마자 너무 귀여워서 ‘귀염이.’ 정말 그냥 지은 티가 확 나면서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옆집 예삐와 뒷집 흰둥이를 보면 뭔가 동네의 흐름을 따른 이름이었다.


귀염이는 내가 마당에서 소꿉놀이를 할 때에도, 엄마 심부름을 갈 때에도, 숙제를 할 때에도 항상 곁에 있었다. 요즘 개 키우는 사람들은 당연히 개 사료 및 개 간식을 먹이며 키우지만 우린 귀염이 사료와 간식을 따로 사지 않고, 우리가 먹는 밥을, 내 과자를 그리고 빵을 함께 나눠먹었다. 앞집도 뒷집도 그렇게 개를 키웠다. 한 번은 개 사료를 먹는 다른 집 개가 멋있어 보여서, 몇 알을 챙겨다가 귀염이에게 가져다주었는데, 냄새를 한번 맡더니 ‘킁’하고 가버렸다. 촌스럽게도 귀염이는 사료보단 된장국 속에 멸치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귀염이가 제일 좋아하던 음식은 멸치였고 제일 좋아하던 사람은 나였다. (라고 말하면 내 동생이 의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귀염이는 소심하고 겁이 많았다. 제일 무서워하던 것은 공이었는데, 나는 항상 이게 불만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면 주인이 공을 던지면 개가 막 뛰어가서 물어오고 그러던데, 귀염이는 공을 던지면 재빠르게 피했다. 다른 집 개처럼 공을 몰고 이리저리 뛰어오는 대신 귀염이는 공이 마당에 나오면 바로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른 집 개들은 가끔씩 쥐도 잡는다고 그러던데, 우리 귀염이는 쥐가 나타나면 내 뒤에 숨었다. 심지어 죽은 쥐가 마당에 있으면 그 자리를 멀리 피해서 갔다. 한 번은 집에 도둑이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개집 안에서 찾은 귀염이는 너무 놀랐는지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콧물을 닦아주며 집을 지켜야 할 놈이 여기서 왜 콧물을 흘리고 있냐며 한참을 웃었다.


이런 소심쟁이에게도 좋아하는  있었는데 그건 바로 놀기였다하교를 하고 벨을 누르려고 대문 앞에 서면  반대편에서 귀염이가 너무 좋아서 끙끙거리며 제자리를 마구 도는  느껴졌다. 나를 보고 싶었구나 하고 활짝 웃으며 문을 열면, 귀염이는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애썼다. 아무리 다리를 조여보고, 문틈을 좁혀 보아도  다리 사이로 머리를 비집어 넣어 어떻게든 빠져나가는 날들이 있었는데 그런 날엔 귀염이를 미친 듯이 쫓아가봐도 따라 잡는  불가능이었다. (요즘엔 길에 개들이 주인 없이, 심지어 목줄 없이 개가 돌아다니는 것은 말도  되는 일이지만, 20년이 훨씬 넘는 예전에는 길거리에 혼자 돌아다니는 동네 개들을 쉽게 찾아볼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주변에서  하나를 집어 들고 크게 “귀염아  먹자!”라고 외쳤다. 그러면 귀염이는 다시 돌아오곤 했다. 손에  돌을 빵인  맛있게 냠냠거리면 자기도 달라며 귀를 뒤로 넘기고 꼬리를 치며 순순히 집에 들어왔다. 물론  방법을 너무 많이 써먹어서 나중엔 먹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저녁 먹을 때가 되면  앞에 와서 짖었다. 집엔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귀염이는 사랑에 빠져 있어서 좋아하는 개 집앞에 항상 있었다고 한다.  번은 친구들이랑 대문  골목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소리가 나서 놀라 쳐다보니 귀염이가 우리 노는  너무 궁금했는지 대문과 바닥의 틈으로 얼굴을 비집고 구경하다가 거기 사이에 얼굴이 껴버렸다. 이날 결국 사람을 불러 문을 떼내고서야 귀염이는 목을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온 귀염이는 우리와 함께 10년을 살았다. 그쯤엔 엄마는 나와 귀염이의 이름을 헷갈려 부를 정도였다. 귀염이의 모든 게 조금씩 느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소심하고 겁이 많고 밖에서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함께 산지 11년이 된 해 늦은 봄, 집에 갑자기 일이 생겼고 아빠와도 당분간 같이 못 지내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당연히 이사 가는 곳에는 귀염이를 데려갈 수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친구네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귀염이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곳에는 귀염이 친구들도 많다고 했고, 그렇게 놀기 좋아하는 귀염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이사 준비를 조금씩 할 때쯤, 귀염이는 뭔가를 느꼈는지 우리 곁을 절대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학교를 갈 때면 끝까지 쫓아오려 했고, 엄마가 외출을 하려고 하면 귀염이는 그렇게 낑낑댔다. 그리고 귀염이는 우리가 이사 가기 전까지 자기 집에서 자지 않고 현관문 앞에서 잠을 잤다. 우리가 없어질까 봐 두려웠는지 그렇게 문 앞을 지켰다.


귀염이를 떠나보내는 날, 대문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귀염이를 억지로 내보내려고 할 때 귀염이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나에게 이빨을 내 보이며 으르렁거렸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다 귀염이는 아무 저항 없이 친구네 차에 올라탔다. 이렇게 이 녀석을 내 친구네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보냈다. 그리고 몇 달 후, 귀염이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우리 가족은 그 이후로 개를 키우겠다는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우린 서로 말해보진 않았지만 헤어짐이라는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녀석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체기가 아직도 내 몸속 어딘가에 걸려있다.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굳이 정을 주어서도 사랑을 해서도 안되지 않을까. 나는 개를 키울 용기가 아직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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