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 Oct 12. 2020

부러우면 지는 거다

내가 떡이 되면 누가 나를 지켜주나

**

달큰하게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을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그녀. 

2016년 겨울, 코로나도 없고 남자 친구도 없던 시절 이야기 하나. 




그녀는 오늘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녀는 잔이 채워지는 대로 원샷을 했고, 술이 취할수록 그녀는 더욱 흥겨워졌다. 그녀가 흥겨워질수록 팀장님은 매우 즐거워졌다. 자신이 계획한 회식이 너무나도 즐거운 것이라는 사실이 그를 들뜨게 했다. 그렇게 들뜬 그는 소주, 맥주, 소맥에서 끝나도 될 회식에 양주를 끌어들였다. 양주도 소맥 마시듯 원샷하던 그녀는 흥이 최고조에 달했고, 즐겁게 노래도 부르고 신나게 춤도 췄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뒤늦게 그녀가 없어진 걸 알아차린 우리는 서둘러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옆에서 울리는 그녀의 핸드폰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그녀의 빨간 지갑. 


순간 흥겨웠던 회식 자리는 얼어붙었고, 우리는 재빨리 같은 건물 화장실로 그녀를 찾으러 갔다. 혹시 몰라서 남자 화장실까지 찾아봤지만 그곳에도 그녀는 없었다. 우리는 삼삼오오 나뉘어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건물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우리는 차가운 공기에 그리고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두려움에 지난 몇 시간 동안 엄청나게 마셔대어 내일 아침 아니 점심쯤에나 깰 술이 이미 다 깨어버린 상태였다. 아직 술이 덜 깨신 팀장님은 그 흥겨웠던 기분은 다 사라지고 얼굴이 말 그대로 똥색으로 변한채, 다시는 회식을 하지 않겠다며 애꿎은 우리에게만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어쩌면 핸드폰, 옷, 가방, 지갑 등 모두를 내버려 둔 채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 탔을지 모른다고, 그래서 그녀는 이미 집에 도착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침대에 눕혔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우린 서둘러 그녀의 핸드폰에 ‘여봉’이라고 저장되어있는 그녀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는 답변과 함께, 그녀의 남편과 우리는 같이 얼어붙어 버렸다. 


그녀의 남편에게 우리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우리는 그분이 오기 전에는 기필코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다시 한번 이 건물 안을, 그리고 2차, 1차 했던 장소들을 되짚어가며 동네를 다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저 멀리에서 들리는 외마디 외침 소리. “찾았어요”


그녀는 옆 옆 건물 편의점 앞에 웅크린 채로 잠이 들어있었다. 아마도 편의점에 뭔가 사러 갔다가,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잠들어 버린 것 같았다. 아무리 깨워봐도, 흔들어봐도, 어느 광고에 나온 것처럼 그녀는 말 그대로 떡이 되어 있었다. 축 처진 몸을 이리 가누지도 저리 가누지도 못한 채 모든 의식은 사라진 채로 그녀는 그렇게 그곳에 있었다. 이제야 얼굴이 핑크색으로 돌아오신 팀장님은, 계속 헛웃음을 내었다. 그는 아마도 이 부서의 책임자로서 오늘 천당과 지옥을 오갔으리라. 


그렇게 마셔대더니, 그렇게 신나 하더니- 그녀를 바라보며 난 저리 안 마신다며 지금 굳이 필요 없는 그녀와의 비교에서 왠지 모를 우월감을 느낄 때쯤, 저 멀리서 헐래 벌떡 뛰어오는 누군가를 보았다.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는 무릎이 훅 나온 회색 트레이닝복에 헝클어진 머리, 맨발에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 그녀를 찾으러 그렇게 단번에 달려왔다. 그는 죄송하다고 연거푸 이야기하며 힘을 줄 의지가 전혀 없는 그녀를 꼭 안고서 택시를 타고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 괜히 핸드폰 연락처 목록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쌀쌀한 바람에 차가워진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전 04화 우리 집 '귀염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