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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Oct 26. 2020

어느 소개팅

늦은 밤,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소개팅을 하고 오는 길이란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야기를 안 들어도 오늘 소개팅이 어땠는지 느낌이 왔다. 올해 38세가 된 후배는 담담한 목소리로 무덤덤했던 소개팅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소개팅남이 싫진 않았단 말에 무심코 “그래도 다시 한번 만나봐” 란 말을 해본다. 더 안 보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후배에게 다시 한번 권유해보려다 결혼했다고 태세 전환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내가 미혼 때, 많은 소개팅을 하며 제일 힘들었던 건 내 짝꿍을 못 찾고 있다는 두려움에 내 생각과 가치관과는 하나의 공통점도 없는 사람을 계속 만나봐야 하나 고민했던 점이다. 분명 나와는 맞지 않은 사람인데 고민하며 놓칠 때마다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맥주 한 캔 사서 들어가라고 하며 토닥토닥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내 소개팅 시절 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중 하나를 공유해보려 한다. 




2016년 어느 소개팅 날- 


아까 이 레스토랑에 들어왔을 때, 종업원이 내 컵에 채워준 시원한 물은 따뜻했던 공기와 만나 길고 얇은 유리컵 바깥에 뿌연 물방울들을 만들었고, 춥지 않은 날씨 탓에 물방울들은 내 컵 아래로 떨어져, 흥건하게 컵 주변의 테이블을 적시고 있었다. 전에 같이 일하던 곳에서 알게 된 분이 왠지 우리는 어울릴 것 같다고 소개해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란 분은 나보단 나이가 훨씬 있으시고, 어느 대기업에서 과장이란 타이틀을 가지신 분이었다. 첫 만남에 30분을 늦으신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딱 보니깐 물 마시는 걸 안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말을 건넸다. 어리둥절한 나의 표정에 그는 자신이 셜록 홈스가 된 마냥 즐겁게 설명한다. “물 잔이 그대로인 채 컵 아래에 물이 고였잖아요, 저라면 들어오자마자 마셨을 거예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난 최대한 그의 말에 웃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우리는 메뉴판을 받았고 함께, 아니 그가 메뉴를 골랐다. “여긴 치킨 팟타이가 맛있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메뉴판 다음장을 넘기려는데, 그는 여기에 여러 번 와봤는지 내가 고르기도 전에 이미 두 개는 거뜬히 골라 둔 걸 보며, “그럼 그냥 그걸로 하죠”로 메뉴 고르기를 마무리 지었다. 


“딱 보니까 이전 사랑이 많이 아팠나 봐요?” 또 시작이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단 표정을 보이니, 그 사람은 씩 웃으며 설명을 해준다. “30대가 지나가는데 결혼을 아직 안 하셔서요.” ‘넌 40대잖니 ‘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아 그런가요?” 하며 최대한 입꼬리를 올려 웃어줬다. 난 그렇게 저녁을 먹을 시간 동안 부채도사인지 무릎팍 도사인지 모를, 나를 보면 딱하니 알겠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웃고 또 웃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았기에 혹은 남자로서 나에게 설명해줘야 할 일들이 참 많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같이 돈을 버는 여성을 이상형으로 두고 있었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 또 “딱 보니~”라고 말을 시작하는 입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울대를 탁 치며 ‘그만 딱 봐, 그만 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영혼 없는 웃음을 지으며 목 인사를 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30대가 되며 20대 동안 하지 않았던 소개팅을 참 많이 했다. 누군가를 다시 만나 진한 사랑도 하고 싶었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남들처럼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더 나이를 먹으면 ‘똥’이 된다고 그래서 소개팅을 시작했다. 이제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데, 나란 사람은 소개팅이란 걸을 통해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우선 낯을 엄청 가리고, 그 사람이 맘에 들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만난 지 두 시간 안에 이 사람을 판단하고 좋아하게 되기란 어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난 소개팅을 고를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그 사이에 있다. 소개팅이 나에겐 맞지 않은 방법이라는 걸 알고 나서, 누군가에게서 들어온 소개팅을 거절했을 때, 난 나이 많고 눈만 높은 철없는 여자가 되어 있었고 그렇다고 저기 멋진 연하남이 멋있다고 말하면 나이 많은 진짜 철없는 여자가 되어있었다. 남의 이목 때문에 소개팅을 하는 것도 있었지만 더 무서운 진실은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 불안함을 느꼈고, 그 불안함으로 남들이 내뱉는 걱정들을 그대로 듣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한 부분에선 자기 인생을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멋있다고 타인에게 올림을 받고 있으면서, 다른 부분에서는 여자로서 나이를 먹고 하나둘 늘어나는 주름살이 두려워 스스로 작아지고 있는 내가, 아주 아이러니하게 지금 여기에 있다. 인생에서 결혼, 사랑이 전부가 아니란 말로 나를 달래려고 시도는 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 나에겐 그 말로는 달래지지 않는다. 난 그냥 사랑을 하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고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고, 또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선 소심하고 작아지고 있는 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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