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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Dec 14. 2020

나의 '하나부지'




지난 월요일 엄마는 외갓집에서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셔서 당장 오늘내일 보내드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전화였다. 올해 100세가 되신 할아버지는 일 년 가까이 자리에서 못 일어나고 계시는 상황이었다. 이미 우리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셨고 육신이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고 계시는 중이시다. 


엄마는 일곱 남매 중에 넷째로 태어났지만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는 언니 오빠를 제치고 나를 우리 집에서 첫 손주로 만들어주셨다. 혹시 첫 손주가 받는 사랑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나는 앞으로 다른 누구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만큼의 할아버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여름이면 오랫동안 외갓집에 머물렀었는데 나는 항상 ‘하나부지’를 부르며 할아버지 곁에서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여름날 끈적이는 더위와 간간이 시원했던 바람 그리고 아이스크림이 생각난다. 해가 긴 여름날, 뜨거운 햇살이 좀 가시고 나면 어떤 아저씨가 트럭에 여러 동물 모양으로 이루어진 말들을 끌고 나타났다. 소위 이동식 말타기 기구 같은 것을 가지고 동네에 나타났는데 100원에서 500원 사이의 돈을 주면 일정 시간 동안 내가 고른 동물 위에서 위아래로 통통 바운스를 느끼며 신나게 놀 수 있었다. 흥겨운 노랫소리도 났었던 걸로 기억한다. 난 항상 할아버지와 말을 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 트럭 앞에는 작은 동네 슈퍼마켓이 있고 평상이 놓여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말위에서 바운스를 튕기고 있는 나를 보며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드셨다. 한참 타고 내려가 하나부지 하고 뛰어가면 할아버지는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입속에 쏙 넣어주시곤 했다. 위아래로 계속된 바운스로 울렁댔던 위장은 밤 맛의 시원함으로 평온함을 찾았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고 있으면 치열했던 말위에선 못 느낀 여름 바람을 느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며 시원하게 바뀐 여름 바람으로 땀을 식히곤 했다. 얼마나 좋았겠는가. 재미있는 말도 타고 있지, 엄마는 평소에 주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도 있지 그리고 나의 모든 행동과 말에 웃어주며 이뻐해 주는 할아버지와 함께 있지.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때쯤 저 멀리서 엄마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에서야 나는 하나부지와 손을 잡고 집으로 가곤 했다. 할아버지는 “내일 또 오자”고 하시며 걸음이 느려진 나를 다독였다. 할아버지와 같이 돌아다녔던 충장로 시내를, 함께 먹었던 메밀국수를, 무등산에서 먹었던 수박을, 평상에서의 한가롭고 평화로웠던 여름날들을 기억한다. 이젠 할아버지 기억에선 모두 희미해졌겠지만 내가 모든 조각 하나하나 기억할 거다. 


저녁때쯤 다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는 다시 안정을 찾으셔서 우선은 괜찮으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지만 안정되었다는 말에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작은 소원이 있다면 

나의 하나부지 누워있는 지금 순간에도 고통받지 않으시길, 

어떠한 신체의 고통도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을 괴롭게 하지 않길. 

잊혔을지 모를 과거의 행복한 기억들이 나의 하나부지와도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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