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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oong Jun 24. 2020

여행 일시정지, 길을 잃었어

여기가 한국인가?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까?



여행 일시정지


신기하게도 여행을 시작한 지 정확히 딱 "1년, 365일" 째 되던 날

나는 갑작스레 ‘한국’이라는 공간에 놓이게 되었고

내 여행의 일시정지 버튼이 반강제적으로 눌러지고야 말았다.


일시정지 버튼이 눌러지고 나자 뒤로 되감을 수도 앞으로 빨리 감을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어엿 일 년을 여행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수도 없이 많이 겪었던 나이기에 이러한 상황에 익숙하리라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애송이였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고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라고 항상 되뇌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런 일은 나에겐 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닌 갑작스러운 주변 상황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귀국행이어서였을까.

1년 만에 오게 된 한국은 내가 그려오던 한국의 느낌이 아니었다.

1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내가 그리워하던 한국의 느낌이 아니었다.


꼬박 이틀을 걸려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들려오는 한국말은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고 중남미 국가에서 10개월 가까이 있었던 나로서는 오랜만에 겪는 한국 물가 또한 적응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 ‘한국’이라는 공간 자체가 나에겐 반갑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여행하는 동안 꿈꿔오던 ‘귀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그려오던 나의 귀국의 모습은

해외에서의 생활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귀국 날짜를 정한 후 그간 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신나게 연락하고 

그간 먹고 싶었던, 하고 싶었던 것들의 리스트를 실행할 마음에 설레어하고

내가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들과 함께 한국 공항에 기쁜 마음으로 들어서는,

해외에 대한 미련이 아닌 해외에 대한 '추억'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그런 행복한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흐뭇해져서 한 번씩 찾아오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귀국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무언가 초라해 보였고 안타까워 보였다.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인지 난 그리웠던 한국에 도착했으면서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전혀 행복하지가 않았다. 도저히 “나 한국 왔어!” 하고 웃으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해외를 좋아하고 여행을 사랑하고 해외살이까지 꿈꾸던 나도 분명 여행하는 동안에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물론 매 순간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된 배낭여행에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하자 가족에 대한 그리움, 친구에 대한 그리움, 음식에 대한 그리움, 한국 일상에 대한 그리움 등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 종종 찾아오던 순간들이 지금은 아니었다. 다시 여행에 박차를 가하며 다시 여행을 즐기며 이후 일정에 대한 설렘이 가득한 시기였다. 오랜 고민 끝에 다시 잡은 나의 이후 계획을 실행할 마음에 들떠있던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여기가 정말 한국인가? 왜 난 여기 있는 거지? 왜 하필 지금인 거지?”

하는 생각만 들었고 지금은 그저 내가 한국에 돌아온 것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만 가득했다. 평소 매일같이 연락했던 친구 몇몇 외에는 아무에게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단 하루 만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변화, 

특히 내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변화였기에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로 인해 바닥까지 떨어진 나에 대한 자신감과 의지, 내 삶에 대한 열정이 나를 쉽게 일으켜 세워주지는 못했다. 




귀국 후 길을 잃었어


그렇게 나는 한마디로 길을 잃어버렸다.

이제 여기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어디로 어떻게 간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조차 생기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이 슬프기만 하였다.


사실 나는 아직 내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그저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파악하고 내가 접하는 새로운 세상 속에서 내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내 삶의 방향과 방법에 있어 더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자 했다. 한번 생각을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가는 나의 복잡한 뇌구조를 알기에 그전까지는 그저 이 여행의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귀국하기 한 두 달 전 그 다양한 옵션들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1순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후 귀국하려 했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했던 나의 진짜 귀국 시점은 '귀국 후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 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는 시점이었다.


내 머릿속에 어느 정도 정리된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한 방향, 그리고 그 방향대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 열정, 거기에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까지. 그 모든 것들을 함께 하는 끝맺음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내가 한국에서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무엇이든 즐길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계획적이고 완벽주의자인 내가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이렇게 무턱대고 한국이라는 땅에 떨어지게 되자 이곳에서의 나의 새로운 삶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여행을 가기 전보다 떨어진 자신감과 용기, 새로운 삶의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이 나를 계속 미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정말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렇게 한국에 돌아오는 건 나의 계획이 아니었는데.

만약 내가 내가 생각했던 진짜 귀국의 시점에 한국을 돌아왔다면 똑같은 백수의 상황이라도 이렇지 않았을 텐데.

단순히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압박감을 느끼고 서두르지 않을 텐데.

이렇게 갑자기 중간에 모든 것을 끊고 돌아오자 모든 것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길을 잃어버린 나의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이는 내 몸의 컨디션으로까지 이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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