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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oong Jun 25. 2020

백수생활은 처음이라서

'한국'이라는 곳이 주는 압박감




격하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지 몇 주가 훌쩍 지나버렸다.

꿈속에서 조차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 나에게 벌어지자 나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 몸에 힘조차 나지 않았다.


여행이 갑자기 정지된 후 나는 그렇게 몇 주간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살면서 이렇게 격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차례로 쉼 없이 졸업했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 첫 직장을 퇴직하자마자 이직, 그렇게 쉼 없이 달려왔고 마지막 퇴사 후 주어진 2주간의 시간조차 여행 준비와 주변 마무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니깐.


생각해보면 원래 난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못되다 보니 여태껏 늘 머리와 몸, 어느 한쪽이든 양쪽이든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을 하던 1년의 시간 동안에도 돈을 벌지 않았을 뿐 내 몸과 마음은 늘 무언가를 하며 '살아'있었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내 삶에 있어서는 너무 큰 의미였기에,

  하루 특별한 것을 하지 않더라도 현지 마을을 둘러보고 현지 음식을 즐기는 등의 사소한 행위 하나라도 나에게는  의미였기에,

지금과 같은 백수였지만 단순히 놀고먹고 아무 생각 없이 쉬기만 하는 그런 백수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있던 나의 몸과 마음이 잠시 죽어있는 기분이다. 이렇게 “내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라는 생각이  것은 어쩌면 살면서 처음  같다. 이런 레알 백수의 생활은 처음것이다.


소위 이야기하는 ‘번아웃  건지, 하루라도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견디던 내가 이상하게도  밖을 나갈 의지조차 생기지 .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딱히 먹고 싶은 한국음식이 생각나지도 . 퇴사를 고민할 당시에도, 퇴사를 했을 당시에도 이런 적이 없던 나인데, 이렇게 나약해져 버린  자신을 누구 앞에도 내보이고 싶지 않다. 몸은 몸대로 여행 증후군이 왔는지 말을 듣지 않고 잠을 많이 자는데도 계속 피곤하고 에너지가 없어 일어날 수가 없다. 이렇 계속 아무것도  하고 누워만 있고 싶다.


사실  레알 백수 생활이 나쁜 것만은 아닌데,  살면서  번쯤 이러는   그렇게 대수라고 그게 이렇게나 낯선 건지. 갑작스러운 변화와 계획에 없던  삶의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그저 현재 돈을 벌지 않고 쉬고 있는 백수의 상태라서가 아니라

현재 무능력해서 돈을 벌지 못하는 소위 ‘능력 없는 백수’라고 나 자신이 느껴져서,

계획한 변화에는 잘 대응하는 나이지만 계획되지 않은 변화에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져서,

그런 나 자신의 모습에 있어 나 자체가 떳떳하지 못해서,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없어서 나의 몸과 마음은 계속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봐


해외에 있을 때나 한국에 있을 때나 난 똑같은 백수의 상태였지만 내가 느끼는 나의 모습과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해외에 있을 때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늘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모든 것을 내 페이스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내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온전히 내가 결정하고 리드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 또한 이러한 나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도, 걱정을 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나의 삶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주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자 난 또 예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늑한 내 방, 편안한 내 침대, 엄마가 해주는 음식, 편리한 주변 상점들과 교통수단 등 이 모든 것들이 분명 그리웠는데 지금은 나의 기분을 달래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이 형성하는 ‘한국’이라는 공간이 주는 압박감이 나를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나는 퇴사 후 분명 이번에는 정말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나 자신과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차근차근 나아가고자 다짐했다.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을 늘 가슴속에 새기며 행동하려 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곳에 오고 나니 그 말은 온전히 잊어버린 채, 해외에서 나아가던 내 삶의 방향은 완전히 잊어버린 채, 난 또 예전과 같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내가 원하는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닌 남들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부터 생각하기 시작한다. 바쁘게 무언가를 해야 하고 빨리빨리 눈으로 보이는 결과물을 원하고 그 결과물을 보아야만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다 보니 늘 뭔가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몇 주간 집에만 있으면서 늘 스마트폰으로는 이것저것 찾아보았지만 어떠한 것도 선택할 수 없다. 3주가 지날 쯤부터는 진짜 뭔가라도 하지 않으면 더 불안해서 안될 것만 같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억지로 밖으로 나와 억지로 카페에 앉아 이것저것 서칭 해본다.


그렇게 나도 또다시 한국 사회의 구렁텅이에 빠져 그 조급함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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