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네
미국에 온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대부분은 평탄하게 보냈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 몇 가지가 있다.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는 지하철인 패스(Path)에서 겪었던 지하철 화재이다.
그 당시 바로 글을 썼었다.
https://brunch.co.kr/@amynote/32
패스는 뉴욕 지하철보다는 훨씬 깨끗하다. 뉴욕 지하철이 신도림역과 같은 느낌이라면, 패스는 신분당선 같은 느낌이다. 둘 다 스크린도어는 없지만, 패스가 훨씬 깨끗하고, 신식이다. 냄새도 안 나고 선로에 쥐가 다니지도 않는다. 그러면 뉴욕 지하철에는 냄새가 나고 쥐가 다니는 거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역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다지 청결하지 못하다.
뉴저지에 사는 나로서는 맨해튼으로 나갈 때 패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버스나 페리도 있지만 내가 사는 집에서는 패스가 제일 좋다. 곧 이사를 가게 되는데, 이사를 가게 되면 버스를 주로 이용할 예정이다), 저 날도 맨해튼으로 나가기 위해 패스를 탔다. 저 당시에는 회사를 다니지 않았을 때였고, 평일 저녁에 로터리로 빅 애플 서커스 공연을 보러가려던 참이었다.
쌉 T이기 때문에 당연히 버퍼를 두고 일찍 출발을 하였는데, 패스가 중간에 지연이 되기 시작했다. 패스는 종종 지연이 되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지만, 버퍼를 둔 시간이 다 지났기 때문에 공연을 못보게 되나 싶어서 짜증스러웠다. 공연 아예 못보겠구나라는 생각과 그래도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으면 그 때라도 들어갈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비우고 짜증스러움만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직원들이 열차를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고, 앞에 선로에 작은 불이 났다고 뒤로 돌아가야 된다고 했다. 전기도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가 다시 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떄부터는 이거 심각한데?싶었다. 그리고 패스는 허드슨강 아래를 지나가기 떄문에 데이터가 잘 안 된다 (물론 다른 구간이라고 잘 되는 건 아니다. 뉴욕 지하철도 데이터가 잘 안 되는 구간이 많다). 남편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안 되었다. (동영상과 사진은 찍어 놓았다! 큰 일 없이 끝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이 에피소드로 브런치 글을 쓰면 딱이겠군! 럭키비키!라고 생각했다. 나도 참 웃긴거 같다.)
패스와 지하철 둘 다 다른 열차로 이동하는게 금지되어 있다 (한국 지하철과는 다르다). 열차와 열차 사이가 실내 통로로 연결된 게 아니라, 외부 공간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안전상의 이유로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연가기 들이닥치기 시작하자, 내 열차칸에 같이 타고 있던 사람들은 우르르 앞 칸으로 이동을 하였고, 나도 같이 이동을 했다. 다들 입을 막고 몸을 아래로 하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 안내방송으로 곧 이동할 거라는 말만 계속 나왔고, 그 상태로 시간이 좀 더 흘렀다.
열차가 이동하기 시작하자 연기도 빠지기 시작했고,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사는 역까지 가지 않고 다른 역에서 다 내리라고 해서 내렸는데, 어쨌든 열차에서 나오니 안도감이 들었다.
큰 사고 없이 넘어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집에 와서 스스로를 도닥인다는 명분으로 집에서 술을 마셨다.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꽤나 아찔했던 사건이었다.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