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 J Nov 29. 2022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 <下>

채사장이 들려준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을 알게 되면서


기회는 나를 향해 무한히 다가오고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랬는데,

이 상황에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뇌리에 삶과 죽음이라는 개념을 담아두고 다녀서인지

이 시점에 인문학 강연이 눈에 띈 건 어쨌거나 우연은 아닐 테다.



운 좋게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저자로 유명한 작가 채사장을 만날 기회가 됐다.

베스트셀러에 관심을 갖는 성향도 아닌 터라 얼굴도 모르던 사람인데 왜 이렇게 익숙하고 친밀하던지.


주제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일단은 듣고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작가 채사장이 기똥찬 분류로 저서를 소개하고 있다. 올해 <소마>라는 소설을 냈다고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과학, 신비, 철학 등등 모든 영역을 총망라한 <지대넓얕> 1, 2에 이어

특별히 '신비' 영역을 더 깊이 공부하면서 쓴 책이 <열한 계단>이라 한다.


채사장은 <열한 계단>의 한 부분을 가져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지 설명했다.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The Eternal Recurrence of the Same)'라는 개념이다.

다음은 채사장의 강연 내용이다. 매우 흥미롭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산속에서 수행하는 30세 청년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로,

훗날 하산해 진리를 설파하는 내용인데 그 핵심 개념이 바로 '영원회귀'라는 개념이다.


간단히 풀이하면 '내가 나에게로 영원히 돌아간다.'는 뜻인데,

이 개념을 이해하려면 먼저 사후관에 무엇이 있는지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어디로 가는가?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가 알고 있는 사후관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영혼은 영생한다는 개념이다.
이슬람·유대교·기독교 등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일컫는 '지속'의 개념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한다.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살아있다는 것.

둘째, 윤회 개념이다.
베다 기반의 힌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등에 등장하는 '순환' 개념이다. 우리는 대표적으로 불교 사상으로 알고 있다. 다음 세상에서는 다른 생명체로 태어난다는 것.

셋째, 무(無) 개념이다.
현대인이 가장 선호하는 합리주의적·과학주의적 관점이다. '단절'의 속성을 띤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


여기에 니체가 한 가지를 더한다.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개념의 영원회귀다.


한 사람의 삶을 예로 들자면 이렇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적으로 많은 사람은 58년 개띠라고 한다.

무려 95만 명으로 올해 수능생이 50만 명, 지난해 신생아 수가 25만 명이었던 데 비하면 굉장한 수다.


이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자.


이 사람은 1958년 개띠의 해에 태어나 자랐고
학교를 다녔고, 회사를 다니다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었다.
직장 생활과 가정생활을 이어가다 퇴직을 했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
 나이 들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기서 영원회귀의 개념을 적용하면,

이 사람의 같은 삶이 같은 시대에서 무한히 반복된다.

다음 삶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이 사람은 1958년도 어느 날 태어났다.
한 가정에서 자라나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했다.
1997년과 2008년에 각각 위기를 겪고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정년퇴직도 했고 이후 가족과 지내다 세월이 흘러 죽음을 맞이했다.


그 삶이 그 삶이다.

그다음 생도 마찬가지다.

니체에 의하면 이 삶은 무한히 반복된다.

그것도 똑같은 1958년부터.


다만 기존에 갖던 시간 길이의 개념은 달라질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짧은 시간 단위는 '순간'이다. 찰나라고도 한다.

또 가장 긴 시간 단위는 '인생 전체'다.

영원회귀하는 삶 전체를 멀찍이서 바라본다면 이 개념은 반대가 된다.

무슨 의미냐 하면,

가장 짧은 시간 단위인 순간이 무한해지고 가장 긴 시간 단위인 인생이 유한해진다는 것이다.


같은 인생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특정 순간도 무한히 반복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시작과 끝이 정해진 직선으로 표현해보자.

이는 영원히 회귀하므로 같은 길이의 직선은 반복된다.

그 인생들 중에서 특정 사건이 벌어지는 찰나의 순간이 있다.

이를 테면 내가 채사장의 강연을 듣고 있는 순간이라거나, 가족과 휴일을 보내고 있는 나른한 순간 말이다.

같은 삶이 반복돼 돌아오듯 그 순간도 같은 때에 무한히 반복된다. 순간들을 이으면 무한한 선이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은 시작과 끝이 정해진 유한의 개념을 띠지만

각 순간은 영원히 지속되는 무한을 의미하게 된다.

그래서 '인생 전체'는 가장 짧은 시간 단위가 되고 '순간'은 가장 긴 시간 단위가 된다는 의미이다.


즉 지금 이 순간이 다음 삶에서도, 그다음 삶에서도 무한히 반복되므로

영원회귀 개념은 이 순간을 가장 가치 있는 시간으로 만들게끔 하는 교훈을 준다.


가만, 니체는 허무주의 사상가 아니었던가?

니체의 허무주의는 끝없는 허무를 만듦과 동시에 이 순간을 박차고 나가게 한다.


한국 사람들은 애석하게도 순간을 창조해내 본 적이 없다.

임시의 삶을 살아간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지금 그런 걸 할 때가 아니다."


숱하게 들어본 말일 것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딸에게 엄마는 말한다.

지금은 공부할 때라고, 대학 가고 나서 하라고.


지금은 임시일 뿐 미래를 위해 사는 삶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이 다음 세상에도, 그다음 세상에도 무한히 올 거라는 걸 안다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가족과, 좋은 사람들과 소중한 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을 '초인(Übermensch; Superman)'이라 부른다.

 - 나무위키에 따르면 니체 철학 용어 '위버멘쉬'는 한국어로 '초인'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슈퍼맨처럼 초능력자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어 '극복인'으로 번역하는 추세라고 한다.-

신은 미래의 천국을 약속하지만

초인은 순간순간을 살아가므로 그런 약속 따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구절


다시 주제로 돌아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에

순간순간을 소중히 보내는 삶을 살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니체는 결국 순간순간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 셈이다.


의문이 들었다.

주물에 찍어낸 듯 같은 삶이 반복된다는 것 아닌가?

삶의 시작과 끝 지점만 정해져 있고 한 인생에서 굵직한 사건과 맥락만 같을 뿐

순간순간을 직접 업그레이드해서 인생 beta, 인생 pro를 만들어가라는 교훈을 위한 거창한 논리였던가?

어디까지가 그대로 반복되고, 어디까지가 바뀔 수 있는 걸까?

내가 순간을 바꾸려는 의지만 있으면 어디까지건 바꿀 수 있는 걸까?

그걸 아는 사람이 있긴 할까? 니체도 모르지 않을까?


모호했다. 하긴 사후 세계를 경험해보고 알려준 사람이 없으니 모호할 수밖에.

Q&A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아서 손을 들지는 않았다.

언젠가 채사장과 혹은 또 다른 만물박사와 마주보고 대화 나누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리를 쉽게 얻고자 하는 게 아니라 생각 정리를 위해서라도 묻고 싶다.


"반갑습니다. 저는 사후 냉동인간이 될 계획이 있는 사람입니다.

200년 후 깨어났을 때의 과학 기술에 기대고 싶어서요.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내놓은 이상 타임머신은 발명될 거라고 믿습니다.

미래를 보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로또 번호도 필요 없고 재개발 지역도 몰라도 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요.


니체의 영원회귀를 제가 믿는다면 저는 냉동인간이 될 필요도, 타임머신을 탈 필요도 없겠네요.

다음 인생에서 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첫인상으로 그 사람을 만나게 될 테니까요.

과연 제가 순간을 바꿀 생각을 할 수 있을지, 순간을 바꿀 타이밍을 의식하고 있을지,

제가 바꾸려 한 순간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을는지요?


꼭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네요."



구름 너머에 평화의 세상이 존재하기를.

♬ Clouds - Before You Exit

작가의 이전글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 <上>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