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에 처음 입어본 교복이 그렇게 좋았던 7080 여공 이야기
* 커버 이미지 출처: KBS충북 유튜브 채널
잊혀가는 옛것과 소외받았던 계층을 조명할 때,
마음이 먹먹해지고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오른다.
특히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내게 치트키다.
숙연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쩌면 고루한 옛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을 자료화면을 통해 보면서 추상적으로 떠올려보기는 했어도
'살면서 스쳐 지나가면서라도 이들 개개인의 삶을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싶은 소재였다.
또 지난해 SPC그룹사 제빵공장에서 일어났던 20대 여성 직원 사망 사고가 떠오르기도 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간 직원이란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모두의 세상이 좋아진 것은 아니구나.
공평선(공장이 쭉 늘어선 지평선)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렇게 그냥 끝이 안 보이게 컸어요.
1977년 청주에 세워진 대농방직공장.
수천 명~만 명에 이르는 직원 중 임금이 적은 어린 여성 노동자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가난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교가 아닌 공장으로 향한 소녀들은
산업체 부설학교가 생겨날 당시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대농이 설립한 양백여중과 양백여상.
77년 중학교가 먼저 생겨났고 이어 79년 고등학교도 생겼다.
어느덧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 고스란히 간직한 예순 전후의 양백 졸업생들은 말한다.
방직공장의 작업환경은 가혹했다고.
더운 열기, 공기 중에 떠있는 새하얀 솜먼지, 손에는 지문이 없어지고 생긴 굳은살…
70년대 후반~80년대 초 대농 입사 직원들의 담담한 인터뷰를 들으면
고달픈 세월을 이겨낸 어린 영혼들의 정신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테이프에 녹음된 앳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은 삶의 무게,
꺼내놓지 못한 힘든 속내를 꾹꾹 눌러쓴 일기장.
그 속에서 고단했던 하루하루가 느껴졌다.
회사가 원하는 노동자와 학교가 원하는 학생 사이,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쳐도 숨기고, 부족한 잠은 이를 꽉 깨물며 참았다.
다치면 공장을 못 나오게 되고, 공장에서 나가면 학교 졸업도 하지 못하니
학교는 꿈과 희망의 배움터이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직원 이탈을 방지하는 통제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하루 꼬박 8시간을 공장에서 일하고, 학교에서 4시간 동안 수업을 듣던 소녀들은
하루 4시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양백에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졸음을 못 이기다 사고를 당한 소녀는 현실이 무서워 장애를 이겨냈다.
공장도 그대로 나갔고 학교도 무탈히 졸업했다.
가난 때문에 딸을 공장으로 내몬 어머니는 그날을 잊지 못하고 속이 아파온다고 했다.
77년 당시 소녀들의 월급은 5만 원 남짓.
용돈은커녕 월급을 집안 살림에 보탤 수밖에 없던 때.
산업역군, 여공이라는 이름표를 단 소녀들은
저임금을 받으면서 국가의 경제 성장에 기여했고 자신 대신 남자 형제들을 공부시켰다.
희생양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 경제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삶을 꾸려온 이들.
이들 중 21살에 중학교에 들어가 담임보다 나이가 많았던 학생도 있다.
담임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
또 17세에 처음 교복을 입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던 학생도 있다.
교복 자율화가 됐어도 졸업식날까지 교복을 입었다고 했다.
현대를 살아가며 비교적 나태하게, 몸 편히 살아가는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겪어보지 못한 시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른들은 꼭 '시대가 그랬다'는 말을 많이들 하신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1970~80년대 한창 경제 성장이 활발히 이뤄지던 시대를 상징하는 '여공'이라는 소재는 누군가에겐 다소 뻔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동양 최대의 방직공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청주 대농을 조명해 그곳에서 함께했던 소녀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한층 더 생명력을 지닌 것 같았다. 시청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이 가까워지는 효과도 있었다.
이런 방송이 바로 지역 방송국의 역할이자 순기능이라 본다.
다양하게 생겨나는 뉴미디어 플랫폼, TV보다 제약이 적어 다채로운 콘텐츠를 골라볼 수 있는 OTT 서비스 위주의 콘텐츠 소비가 추세라고 하지만 분명 지역 방송이 가진 역할이 있다.
언론인으로서 숱하게 지역 방송의 위기가 논의의 중심이 되는 것을 봐왔고 또 지역에 몸담았기 때문에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정답은 없지만, 내 답은 이렇다.
그 지역만이 만들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야 지역뿐 아니라 전국에서, 세계에서 찾아서 본다고.
또 KBS라면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각 지역의 자료화면을 활용하기도 좋다.
제작자로서 인물에 몰입하다 보면 후반으로 갈수록 자칫 감성에 기대 풀어나가는 경우도 있는데
탄탄한 인물 이야기와 사실 고증, 자료화면으로 알차게 구성한 작품이다.
해당 방송은 KBS충북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정말 고생 많았다.
너 참 장하다.
안녕 나의 소녀시절.
여공이라는 이름의 꿈 많던 소녀들과 험한 세상 견뎌온 이들의
수고로웠던 삶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