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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May 20. 2021

자기 접촉_존재가 눈물을 흘리는 시간

나를 만나는 순간 우리 안에서 반짝이는 그것

          

직업이 심리상담자인지라,

누군가와 자기 자신에게 접속하는 가장 귀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우리 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존재가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결국 나는, 눈물의 물꼬를 터주고

눈물을 목격하는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눈물, 하면 슬픔을 떠올리지만 

우리는 꼭 슬플 때만 울지는 않는다. 

아파서, 화가 나서, 억울해서, 놀라서, 격양돼서 그리고 심지어 기뻐서도 울게 된다. 

눈물의 모양도 저마다, 때마다, 다르다. 

뺨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눈물이 있고 

훌쩍이는 눈물이 있고 

통곡과 함께 번져가는 눈물이 있다.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도 있고 

또 역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내리는 순간이 있다.     

상담실에는 그래서 언제나 티슈가 예비되어 있다. 

티슈와 시계, 상담 기록지와 펜, 물 한 컵. 

이 정도가 마음속 우물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준비물이다. 

'눈물을 흘려도 괜찮아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을지 몰라도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어떤 마음을 

하나씩 꺼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심정으로

마주하고 응시하고 그리고 목격한다. 

존재가 눈물을 흘리는 가장 귀한 시간을.        


상담실에 오자 마자

그동안 혼자 버텨오고 막아왔던

 감정의 둑이 그대로 열리는 사람들도 있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도 있고, 

끝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필요한 순간도 있고

눈물을 멈추고

 그 눈물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눈물을 흘리면서 내어놓는 반응도 조금씩 다르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눈물에 대해서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디에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흘린 덕분에 홀가분해진 사람도 있고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음번에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어쩌면

애써 서둘러 눈물을 거두어가는 사람들이야 말로 

눈물을 더 흘려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울지 마라’는 이야기를 얼마나 들어왔고 

스스로에게 해왔을지를,

 그 눈물의 역사를 생각해보게 된다.        

미국의 상담자인 로리 고틀립은

끝끝내 바로 앞에 놓인 상담실 티슈를 쓸 생각을 하지 못하고(보지 못하고) 자신이 가방을 뒤져 찾은 작은 티슈 조각 하나로 다 닦아 낼 수 없는 눈물을 찍어내려는 시도를 반복하는 내담자의 모습에서 그녀가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더 정확하게는 되도록 관계하고 관여하지 않으려는 방식)을 읽었고,


심리치료에 있어서 정서를 다루는 과정을 강조한 레슬리 그린버그는 너무 슬프고 기력이 없어 눈물만 흘릴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내담자가 울면서도 힘 있게 티슈를 뽑아내는 동작 속에서 그녀의 회복 가능성을 보았다. 

말이 아닌 행동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뿐 아니라 눈물을 수습해가는 과정에서 

그녀가 가고 있는 방향, 가야 할 방향을 읽은 것이다.     

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란 

우리 자신과 가장 근접한 접촉을 하는 

가장 귀한 순간이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나 자신과 함께 하지만,

진정으로 내가 나와 함께 하는

 ‘자기 접촉’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그렇게 나 자신을 스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눈물을 흘리는 순간은 

그렇게 스쳐가던 자신의 감정을 붙잡고 

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이기에 소중하다. 

가장 여려지는 동시에 가장 강해지고 

나 자신은 물론 그런 나를 바라봐주는 타자와 가

장 끈끈한 연대의 가능성에 노출되는 시간이다. 

있는지도 몰랐던 내 마음속 우물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기 접촉의 시간이 부족해지면

나를 점점 잃어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만나 반짝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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